[사설]‘돈주고 산 정상회담’이었으니

  • 입력 2003년 6월 25일 18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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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송금액 중 1억달러는 ‘약정한 정책적 차원의 정부 지원금으로 남북정상회담과 연관성을 부인하기 어렵다’는 특별검사팀의 수사발표는 충격적이다. 예상했던 대로 정상회담 대가성을 확인한 것이라는 점 때문만은 아니다. 그런 사실이 지금까지 조직적으로 은폐되어 왔다는 점이 더 경악스럽다.

북한의 어려운 사정을 고려해 우리 정부가 스스로 지원키로 한 것이지 정상회담 대가는 아니라는 임동원 전 대통령특보의 해명은 구차하다. 그렇다면 당당하게 정부 돈을 줬어야 할 게 아닌가. 현대측에 몰래 부담을 떠넘긴 것만으로도 떳떳지 못한 거래였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랬으니 정상회담 이후 남북교류와 협력이 합의대로 진전되지 못했을 것이다. 걸핏하면 북한이 뒷돈을 대달라고 손을 내밀었을 게 틀림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북 송금의 철저한 진상규명은 남북관계의 투명성 확보에도 도움이 된다. 앞으로는 북한이 우리 정부와 뒷거래를 시도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에서다.

특검팀은 해체됐으나 아직 규명해야 할 게 많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정부차원의 지원을 사전 지시하거나 사후 승인을 했는지 여부조차 드러나지 않았다. 정책지원금의 성격도 보다 분명히 밝혀져야 한다. 금융감독원과 감사원의 부실감사나 감사은폐에 대한 조사도 미진하다. 박지원 전 대통령비서실장의 150억원 뇌물수수혐의는 조사불충분으로 아예 공소장에서 빠졌다.

청와대도 새 수사주체에 대해서는 국회의 판단에 맡기겠다고 한 만큼 국회에 제출된 한나라당의 새 특검법안 협상에 민주당은 즉각 응해야 한다. ‘돈 주고 산 정상회담’이라는 비판까지 나오는 마당에 무엇을 더 가리고 누구를 더 감쌀 수 있겠는가. 한나라당도 힘으로 몰아붙이려는 생각을 버리고 민주당을 협상에 끌어들이려는 진지한 자세를 보여야 한다.

여야 모두 내년 총선을 의식해 이 문제를 정략적으로 활용해서는 안 된다. 나라 형편이 어려운데 이 문제로 정국이 경색되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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