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 특검연장 거부 시사]野 전면전 선포…정국 냉기류

  • 입력 2003년 6월 22일 18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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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송금사건의 특검 수사 연장을 둘러싼 정국 기류가 심상치 않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22일 특검 수사 연장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을 시사하자 한나라당은 “국정협조 중단”을 선언하며 전면전에 나설 태세다. 노 대통령이 수사기간 연장을 거부할 경우 정국은 여야간 대치국면으로 바뀌면서 급랭할 조짐이다. 23일로 예정된 청와대의 발표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22일 대북 송금 사건 특검 수사기간 연장을 거부하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한 1차적 논거는 대북 송금 사건의 줄기에 대한 수사는 이미 끝났다는 판단에서다. 특검수사 막판에 불거진 ‘150억원 비자금’ 의혹은 파생 사건인 데다 장기수사가 불가피한 만큼 검찰이 맡는 게 낫다는 ‘분리 수사론’에 손을 들어준 셈이다.

노 대통령은 21일 아침 송두환(宋斗煥) 특별검사와의 조찬 회동에서 특검 수사의 진척상황을 자세히 물어본 뒤 이 같은 입장을 정리했다는 게 참모들의 전언이다. 그런 탓인지 일요일인 22일 청와대는 별다른 움직임 없이 평온했다. 노 대통령은 아침에 전에 살던 종로구 명륜동을 다녀온 뒤에는 줄곧 관저에서 휴식을 취했고 별달리 의견수렴을 위한 비서진의 회의도 소집하지 않았다.

실제 송 특검도 노 대통령과의 조찬회동에서 수사기간 연장을 요청한 이유를 ‘150억원 비자금’에 대한 수사 때문이라고 말해 이미 법리적인 쟁점은 150억원 수사 주체가 특검이냐, 검찰이냐로 압축된 상태였다.

그러나 송 특검과의 회동 직후 소집된 핵심관계자 회의에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회의에 참석한 문희상(文喜相) 비서실장, 문재인(文在寅) 민정수석비서관, 강금실(康錦實) 법무장관, 정상명(鄭相明) 법무차관 가운데 문 실장은 검찰 수사를 주장한 반면 강 장관은 “기왕 특검이 조사를 해온 만큼 마무리도 특검이 하는 게 좋겠다”는 상반된 의견을 냈다는 후문이다.

주무 수석비서관인 문 수석은 “특검이 마무리하는 게 합리적이지만, 통상 계좌추적에 오랜 시간이 걸리고 관련자가 외국에 나가있는 점 등을 감안하면 수사기간을 연장해도 특검이 마무리하지 못한 채 (결국) 검찰로 넘어갈 가능성도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결국 노 대통령은 150억원에 대한 수사를 검찰에 맡기되 검찰수사 결과 국민 불신이 가시지 않을 경우 여야 합의 아래 새로운 특검법안을 통과시켜 ‘제2의 특검’ 수사의 여지를 열어놓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지만 노 대통령의 선택에는 특검 수사기간을 연장할 경우 지지층의 이반(離反) 우려 등 정치적 판단이 더 크게 작용했다는 게 중론이다.

특검법 공포 당시에는 민주당 내에서도 찬반이 엇갈렸으나 이번 수사기간 연장 문제에 대해서는 신, 구주류가 일치된 목소리를 내면서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기 때문에 노 대통령으로서도 이를 거스르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다는 얘기다.

또 민주당 안팎에서 실시한 각종 여론조사에서 특검을 연장할 경우 지지층의 반발 강도(强度)가 심각했던 점도 노 대통령이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대목이었다. 이미 특검법 공포 당시 한나라당의 손을 들어준 만큼 부담이 줄어들었고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지 못한다면 ‘집토끼’라도 놓쳐서는 안 된다는 게 청와대측의 시각인 셈이다.

유인태(柳寅泰) 정무수석비서관은 “야당이 반발하겠지만, 그거야 늘 있는 ‘직업적인’ 반발이 아니냐”면서 “지금 검찰은 대통령까지 잡으려고 하는 판인 데, 150억원 부분을 검찰이 수사한다고 해서 봐주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의 속내는 그동안 전혀 드러나지 않았으나 22일 아침 명륜동 주민들과 나눈 대화가 청와대 전속 ENG 카메라에 녹취됐고 이 녹화테이프가 방송사에 공개되면서 공식 입장을 발표하기 하루 전날 대통령의 의중이 흘러나오게 됐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한나라 강력 반발▼

한나라당 대북 송금 진상조사특위 이해구 위원장이 22일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특검 수사기간 연장을 촉구하고 있다.-서영수기자

한나라당은 22일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특검 수사기간 연장 요청을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설이 나오자 강하게 반발했다.

당 대북 비밀송금 진상조사특위 이해구(李海龜) 위원장은 이날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특검이 수사상 필요로 인해 수사기간 연장을 요청했으면 대통령은 정치적 고려 없이 이를 받아들이는 것이 특검법의 취지에 맞다”며 특검 수사기간 연장을 촉구했다.

이 위원장은 이어 “현재 활동 중인 특검의 수사 핵심은 박지원(朴智元) 전 문화관광부 장관이 현대로부터 150억원을 받았느냐 여부가 아니다”며 “특검 수사의 핵심은 대북 송금의 주역이 현대냐, 김대중(金大中) 정부냐라는 점과 함께 대북 송금의 성격, 뒷거래 송금 규모와 최종 전달 대상이다. 따라서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도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공세는 “박 전 장관의 수뢰 의혹은 특검 수사 대상이 아니다”는 논리로 특검 수사기간 연장을 저지하려는 여권 일각의 움직임에 쐐기를 박아야 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한나라당은 이와 함께 특검 수사기간 연장 무산 이후 정국 경색의 모든 책임은 청와대가 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26일 새 지도부가 출범하면 대여 공세의 수위가 한층 높아질 것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박종희(朴鍾熙) 대변인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노 대통령이 특검 수사를 중단시킬 경우 △새로운 특검법안 국회 제출 △민생과 관련 없는 법안 심의 거부 △사안별 국무위원 해임건의안 제출 강행 등 강경투쟁 방안을 밝혔다.

이규택(李揆澤) 총무도 “노 대통령이 특검을 거부한다면 야당은 더 이상 국정에 협조하지 않을 것”이라며 “특히 노 대통령 주변 비리에 대한 국정조사와 교육부총리 해임건의안 등 그동안 보류해온 안건들을 강하게 추진하겠다”고 경고했다.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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