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영변정밀폭격 기획 애시턴 카터 前 美차관보 인터뷰

  • 입력 2003년 6월 19일 18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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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시턴 카터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사진)는 19일 “미국 정부는 만약 북한을 공격하는 상황이 빚어지더라도 폭격 대상은 핵시설에 국한될 뿐, 전면적인 공격은 아니라는 점을 북한 당국에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1994년 1차 북한 핵위기 때 미 국방부 차관보로서 북한 영변 핵시설에 대한 정밀폭격계획(surgical strike)을 기획했던 카터 교수는 이날 본보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북한의 핵개발 야심을 주저앉히기 위해 군사행동이 (옵션에서) 배제되어선 안 된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북한이 핵시설을 공격받았다는 이유로 한국에 보복공격을 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며, 보복공격을 할 경우 북한 정권은 종국에는 붕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상황이 오면 한미 양국은 물론 동북아시아에 엄청난 피해를 줄 것이다”고 말했다.

카터 교수는 이어 “한미 양국의 북한에 대한 정책은 북한의 정권교체(regime change)가 아니라 핵무기와 미사일 제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북한이 북한 국민을 위해 평화적인 방법을 통해 더 나은 상황으로 바뀌도록 하는 것이, 북한 정부를 포함한 모든 당사자의 바람(wish)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미 양국이 공조를 통해 평화적 해결을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며 한미 공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북한이 이미 핵무기를 갖고 있다고 보나.

“북한은 이미 1989년 핵무기 1, 2개를 만들 수 있는 분량의 플루토늄을 생산했을지 모른다. 미국은 이런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14년간 인내해 왔다. 이 정도 소규모의 플루토늄은 한반도의 전쟁 억지력 구도를 의미 있게 바꿔놓을 수 없고, 북한이 94년 제네바합의를 통해 89년에 생산한 플루토늄을 공개한 뒤 폐기할 것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 정도 소량의 플루토늄은 넘길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이 이 플루토늄으로 핵무기를 만든다면 용납될 수 없을 것이다.”

―미국이 설정한 ‘금지선(레드 라인·red line)’은 무엇인가.

“미국은 북한 핵 처리에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북한이 (평북) 영변지역에서 폐연료봉을 재처리해 핵무기를 연속 생산하는 것은 레드 라인을 넘어선 심각한 행위다. 경제적 압박, 군사행동 또는 두 가지가 동시에 진행할 수 있다.”

―미국 정부가 북한을 상대로 마약 위조지폐 등 ‘비핵(非核) 이슈’를 활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해상봉쇄 가능성도 있나?

“해상봉쇄는 북한에 핵무기 개발을 고집하는 것은 경제적 자살행위나 그 이상의 결과를 부를 것이란 점을 설득하는 외교전략의 하나다. 그러나 봉쇄 자체가 마약 플루토늄 등 소량의 화물을 완벽하게 적발해 낼 수는 없다. 이런 점에서 핵문제 해결을 위한 정답은 아니다.”

―한국이 반대하더라도 미국이 경제제재 등 강경조치를 내릴 것으로 보나.

“북한의 정확한 의중을 풀이해 내는 것은 어렵다. 명백한 것은 북한이 핵카드를 손에 쥐고 싶어 하는 동시에 정권도 유지하고 싶어 한다는 점이다. 북한이 둘 가운데 하나만을 선택하도록 압박하는 데 외교력을 모아야 한다.”

―미국의 국무부와 국방부가 강온 전략을 놓고 다른 목소리를 낸다는 지적이 있다.

“미국 정부는 북한 문제를 내부적으로 토론해 왔다. 그러나 아직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분명한 전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과 같은 우방국이 북한 문제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결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본다. 중요한 것은 한미 공조가 없다면 어떤 종류의 대북정책도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전에 없이 한미동맹을 강조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한반도의 복잡한 안보문제를 염두에 두고 있다. 두 지도자의 견해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그는 마지막으로 “한미 양국의 국익이 동일하지는 않더라도 상당 부분 중첩된다는 것을 두 나라 국민이 기억하도록 하는 것은 중요하다. 양국은 공조를 통해 평화적 해법을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승련기자 srkim@donga.com

▼애시턴 카터 교수▼

클린턴 행정부 시절 1993년부터 96년까지 국방부 국제안보정책담당 차관보를 지냈다. 그는 클린턴 전 대통령처럼 대학졸업 후 ‘로즈 장학생’으로 선발돼 옥스퍼드대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차관보 시절 국방부장관이었던 윌리엄 페리와는 과학자 출신 국방전문가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카터 교수는 94년 국방부를 출입했던 기자가 최근 출간한 책에서 “당시 F117 스텔스 전폭기와 토마호크 미사일 등을 동원해 영변 핵시설을 공격하는 계획을 세워뒀으나, 공격 명령 하달 직전 북한과의 핵 합의로 계획이 전격 취소됐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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