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들 "盧정부 널뛰기정책이 경제위기 불러"

  • 입력 2003년 6월 9일 18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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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과 일관성 없는 정부 정책이 소모적인 이념논쟁과 경제난을 부르고 있다.”

“장기적인 성장 동력을 발굴해야 한다.”

경제상황에 대해 정부의 인식이 너무나 안이하며 대책도 적절치 못하다는 지적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9일 시민단체 ‘함께하는 시민행동’과 시민방송 RTV가 주최한 좌담회에서도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이 같은 질타가 거침없이 쏟아져 나왔다.

성균관대 안종범(安鍾範) 교수, 영국 케임브리지대 장하준(張夏準) 교수, 이화여대 전주성(全周省·이상 경제학) 교수 등 경제현실을 보는 눈이 날카로운 것으로 정평이 난 경제학자들의 발표 내용을 간추린다.

▽안 교수=경제고통지수와 부동산값 급등을 고려하면 우리는 외환위기 직후보다 더 고통스러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외환위기의 원인이 ‘시장 실패’였다면 이번 위기의 원인은 ‘정부 실패’다.

정부정책은 일관성이 있고 예측 가능해야 한다. 그런데 현 정부에서는 금리 인하, 법인세율 인하, 출자총액제한 완화 등을 둘러싸고 정책기조가 급변하거나 후퇴, 번복하는 사례가 많았다.

가장 심각한 정부 실패는 노사관계를 풀어가면서 법과 원칙이 뒤로 밀려났다는 점이다.

한국경제는 지금 ‘진보냐 보수냐’, ‘분배냐 성장이냐’ 등 이념의 두 갈래 길이 아니라 ‘추락이냐 도약이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 우리를 낭떠러지로 떠밀고 있는 것은 불필요한 이념논쟁과 집단이기주의, 인기영합주의다.

▽장 교수=현 경제위기의 본질은 투자 위축이다.

투자위축의 첫 번째 원인은 차입경영을 죄악시해 부채비율을 낮출 것을 강요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금융기관의 안정성과 수익성을 지나치게 강조, 금융기관들이 상대적 위험성이 높은 기업금융을 전면 회피했기 때문이다.

세 번째 원인은 주주자본주의의 확산과 자본시장 자유화다. 외국인투자자나 소액주주들은 기업의 장기적 성공보다 단기 배당이나 주가차익을 선호하기 때문에 기업으로서는 설비와 기술에 대한 꾸준한 투자가 어렵다. 또 적대적 인수합병이 손쉬워지면서 기업들은 장기투자보다 단기 경영권 방어에 치중하게 됐다.

한국경제의 성장 동력을 회복하려면 대기업의 투자를 위축시키는 정책을 지양하고 출자총액제한과 지주회사 설립요건을 완화해야 한다.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대기업들은 주주, 종업원, 거래은행, 하청업체 등을 포함한 사회적 통제 강화를 받아들여야 한다.

▽전 교수=중앙과 지방,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지나친 불균형을 개선하는 것은 경제의 성장을 위해 바람직한 시도다. 그러나 방법론이 미흡했다.

개혁정책의 정당성 확보를 소홀히 한 채 당위성만 강조, 소모적인 이념논쟁과 집단계층간의 갈등을 확산시킨 측면이 있다.

부동산투기, 노사분쟁, 경기침체,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등의 현안 처리에서 나타난 정책 혼선을 주무 부처만의 잘못으로 돌리기는 어렵다. 경제 전반을 포괄하는 체계적인 정책방향과 이를 조율할 조정기능이 불분명한 상황에서 혼선이 나타나는 것은 당연하다. 개혁의 방법론을 체계화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전략과 수단을 택할지, 재원이나 수단에 한계가 있거나 목표가 충돌할 때는 어디에 우선순위를 둘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현 정부가 겪는 어려움의 상당부분은 ‘신뢰의 위기’다. 안에서 끼리끼리 하는 토론으로는 해법을 찾기 힘들다.

천광암기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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