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언론보도 분류방침 철회가 맞다

  • 입력 2003년 4월 17일 18시 23분


코멘트
조영동 국정홍보처장이 엊그제 국회 문화관광위원회에서 ‘언론 보도를 다섯 단계로 분류하는 청와대의 기준이 뭐냐’는 질문에 대해 ‘잘 모르겠다’고 대답한 것은 기이한 일이다. 일주일이 멀다하고 쏟아내는 정부의 언론정책들이 정상궤도를 이탈해 있음을 스스로 시인한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 홍보의 최고책임자인 국정홍보처장도 모르는 분류 지침을 다른 정부 부처들이 어떻게 따를 수 있다는 것인지 황당하기 짝이 없다.

청와대가 언론 보도에 대해 ‘긍정’ ‘단순’ ‘건전 비판’ ‘악의적 비판’ 같은 모호한 기준을 설정하고 그것을 모든 정부 부처에 내려보내 하루 한차례씩 보고를 올리라고 한 것은 처음부터 터무니없는 것이었다.

오보 문제만 해도 해당 공무원이 눈 딱 감고 사실이 아니라고 말해 버리면 엄연한 사실조차도 오보가 되어버리는 마당에 정부 당국자가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건전’이 ‘악의’로, ‘악의’가 ‘건전’으로 뒤바뀔 수 있는 것이다. 각 부처가 이 지침을 자기변호나 변명의 수단으로 이용하려 해도 딱히 검증할 방법이 없다.

이렇게 분류된 각각의 통계를 어떻게 활용하겠다는 것인지도 의문이다. 비판적인 언론과 언론인을 분류하고 감시하는 기초 자료라도 만들겠다는 것인가. ‘잘 모른다’는 조 처장의 답변은 이 지침을 실행에 옮기더라도 혼란을 빚을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다. 어쩌다 이처럼 언론 역사에 듣도 보도 못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청와대가 다른 국가적 중대사를 제치고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에 매달려 행정력과 세금을 낭비해도 되는 것인지 참으로 착잡한 심정이다.

청와대는 이 지침에 대해 국정을 모니터하겠다거나 일의 효율성을 높이려는 차원이니 하는 말로 얼버무렸지만 어떤 말도 구차한 설명이기는 마찬가지다. 국회 질의에서 조 처장이 청와대에 이 지침의 철회를 건의하겠다고 밝힌 것은 늦게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청와대는 이를 받아들여 지침을 철회하는 것이 옳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