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이슈]전문가들이 본 '盧대통령 언론관'

  • 입력 2003년 3월 30일 18시 57분


코멘트
언론학자와 원로 언론인들은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29일 대통령비서실 직원 워크숍에서 밝힌 언론관에 많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우선 노 대통령이 ‘일부 언론이 정부에 대해 시샘과 박해를 하고 있다’고 주장한 것은 언론의 비판과 견제를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게 학자들의 지적이다.

세종대 남시욱(南時旭·언론학) 석좌교수는 “언론의 정부 비판은 헌법이 부여한 국민의 기본권이다. 그가 언론의 비판을 ‘시샘’이니 ‘박해’니 한다면, ‘국민의 공복’인 대통령으로서 그의 인식에 중대한 문제가 있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고 지적했다.

▼관련기사▼

- 盧대통령이 밝힌 언론관

한림대 유재천(劉載天·언론정보학) 교수는 “정부는 언론의 비판을 정책 수행에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받아들여야지 정부를 헐뜯기 위한 동기에서 시도되는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은 언론의 본질적인 기능이다”고 말했다.

세종대 금창태(琴昌泰·언론학) 교수는 “‘박해’란 부당한 권력집단이 부당한 방법으로 약자의 권리를 침해하고 억압하는 것이지 정치인이 정치 활동에 대해 공격받는 것을 박해라고 하지 않는다. 언론은 정치권력을 박해하는 것이 아니고 사회 여론을 대변해서 정치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서울대 추광영(秋光永·언론정보학) 교수도 “정권은 막강한 권력을 남용 오용하면서 자기 권력을 확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언론이 이를 감시하고 막아주지 않으면 민주주의의 기초가 흔들린다”면서 “이런 점에서 정부는 언론을 카운터파트로 인정해주며 각자 자기의 길을 가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또 ‘언론은 통제 검증 감시를 받지 않는 권력으로 이를 세습까지 한다’는 노 대통령의 인식은 시장 메커니즘에 따른 독자들의 자유로운 선택을 무시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남시욱 교수는 “언론은 하루하루 국민의 검증과 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 지지 없는 언론은 하루도 존립할 수 없는 것이다”고 말했다.

금창태 교수는 “대통령은 5년에 한 번씩, 국회의원은 4년에 한 번씩 (선거를 통해) 검증받지만 언론은 매일 사상의 자유시장에서 독자로부터 검증받는다. 만약 한 언론이 공정하지 못하고 시대의 방향을 읽어내지 못한다면 당연히 영향력이 떨어지고 외면당할 것이다. 따라서 언론의 영향력이라는 것은 스스로 만든 권력이 아니라 국민의 선택에 따라 만들어지는 것이다”고 지적했다.

유재천 교수는 “언론이 검증되지 않은 권력이라는 것은 언론을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다. 요즘은 독자뿐 아니라 시민단체의 비판도 있고, 정정보도 및 반론권 청구나 민형사 소송 제기 등 언론을 견제하는 장치가 많이 있다. 선입견을 갖고 언론을 개혁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노 대통령은 최근 국정홍보처로부터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언론의 오보에 적극 대응토록 지시한 바 있다. 또 공무원 방문 취재 금지 등 ‘새 기자실 운영방안’을 확정한 27일의 정부 부처 공보관회의 때도 39쪽짜리 회의자료 중 35쪽을 언론의 보도에 대한 반론청구 및 민형사 소송 제기법 등을 설명하는 데 할애했다.

금창태 교수는 또 ‘언론 권력 세습론’에 대해 “민주주의 국가에서 언론은 항상 사기업으로 존재한다. 적법한 절차에 의해 한 집안이 대대로 언론사를 소유하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당연한 일이다. 워싱턴 포스트도 100여년간 그레이엄 집안이 운영하고 있다. 뉴욕 타임스도 마찬가지다”고 말했다.

고려대 심재철(沈載喆·신문방송학) 교수도 “신문사는 기본적으로 사기업이다. 사기업의 경영권이 합법적으로 자식에게 넘어가는 것을 세습이라고 보는 것은 자본주의체제에서의 재산 양도의 자유까지 부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이 정보 단속을 강조한 것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은 언론의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 따른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양대 이재진(李在鎭·신문방송학) 교수는 “정부는 기본적으로 기밀주의에 기반을 둔 조직체다. 그러나 언론의 본질은 정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국민에게 알리는 ‘채널’이다. 노무현 정부는 최대한 정보를 공개하겠다고 하지만 중요한 것은 공개되지 않는 그 이면의 것들이다. 권력은 언제든 남용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허엽기자 heo@donga.com

서영아기자 sya@donga.com

김수경기자 skki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