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영수회담' 갈팡질팡

  • 입력 2003년 3월 11일 19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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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11일로 예정됐던 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한나라당 지도부간의 영수회담은 연기소동 끝에 결국 ‘12일 청와대 회담’으로 정리됐다. 하지만 한나라당의 회담 연기소동은 단순한 해프닝 차원을 넘어 대선 패배 후 당의 난맥상을 가감 없이 보여준 ‘오락가락 행태’였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당 개혁안을 둘러싸고 심각한 내분 양상이 전개되고 있는 가운데 ‘포스트 이회창(李會昌)’의 공백을 고스란히 노출한 것이라는 내부진단도 많다. 특히 이번 영수회담 합의 과정에서 나타난 임시지도부의 리더십 부재는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원내 제1당임에도 불구하고 중심을 찾지 못하고 있는 한나라당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줬다는 지적이다.

우선 첫 영수회담을 앞두고 당내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못한 채 섣불리 회담 일정을 잡은 게 문제였다는 당 지도부의 해명은 설득력이 별로 없다.

민주당 정대철(鄭大哲) 대표와 김원기(金元基) 고문을 채널로 해서 청와대와 한나라당간의 영수회담 물밑 작업은 이미 3월 초부터 시작됐다. 또 한나라당 박희태(朴熺太) 대표권한대행과 민주당 김 고문이 7일 회담 일정을 확정하기에 앞서 한나라당 주요당직자들이 모여 영수회담 참석자 및 의제에 대한 의견조율까지 마친 상태였다.

이 과정에서 당초 박 대행은 ‘단독으로 청와대 만찬에 참석하겠다’고 김 고문에게 말했다가 10일 유인태(柳寅泰)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이 당사를 방문하자 갑자기 “노 대통령이 당사를 방문해 주도록 해달라”고 요구했다. 앞서 7일 오후 열린 주요당직자회의에서 당3역이 ‘청와대행 불가’를 주장한 데다 혼자 영수회담에 참석했을 경우 ‘뒷말’이 나올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10일 국회의원 지구당위원장 연석회의에서 “영수회담 때 특검제 논의를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거세게 나오자, 박 대행과 지도부는 다시 긴급회의를 열어 전격적으로 회담 연기를 결정하고 이를 일방적으로 청와대에 통보했다.

연석회의에서 특검제를 영수회담 의제로 포함시키는 문제를 놓고도 의원들간에 의견이 엇갈리자 박 대행은 ‘공’을 다시 주요당직자회의로 넘겼고, 당직자들이 강경론과 온건론으로 나뉘면서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장면도 빚어졌다.

회담일자 외에 장소와 참석자를 둘러싼 혼선도 벌어졌다. 회담 장소는 청와대(만찬)→한나라당사(오후)→청와대(오찬)로 번복됐고, 당측의 참석자도 박 대행 혼자에서 박 대행과 김영일(金榮馹) 사무총장, 이규택(李揆澤) 원내총무, 이상배(李相培) 정책위의장, 김용학(金龍學) 대표비서실장, 박종희(朴鍾熙) 대변인으로 바뀌었다. 수도권의 한 초선 의원은 “당내의 여러 계파와 이념적 혼재로 인해 각종 정책 및 당론 결정 과정에서 혼선이 벌어지고 있다. 지도부가 한계에 봉착한 것 같다”고 말했다. 게다가 새 지도부를 구성할 전당대회가 당권주자측과 지역별 지구당위원장들의 얽히고설킨 이해관계 때문에 빨라야 4월 중순에나 가능할 전망이어서 리더십 부재로 인한 당의 혼란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종훈기자 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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