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 정책실장 "분배가 중요, 박정희 신화 극복해야"

  • 입력 2003년 2월 25일 18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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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소득순이 아니다. 행복은 다른 사람과 비교한 상대적 소득수준에서 결정되므로 성장보다는 분배가 더 중요하다.”

“개발독재 때문에 경제성장이 이뤄진 것은 아니다. ‘박정희(朴正熙) 신화’의 극복 없이는 민주주의와 발전은 요원하다.”

25일 출범한 노무현(盧武鉉) 정부의 경제 및 사회정책 기본방향을 가늠케 하는 이정우(李廷雨·사진) 신임 대통령정책실장의 논문이 최근 한 학술지에 발표돼 눈길을 끌고 있다. 한국경제학회가 창립 50주년을 맞아 13일 발간한 ‘경제학 연구’에 50쪽 분량으로 실린 ‘한국의 경제발전 50년’이란 제목의 글.

노 대통령의 경제분야 핵심측근 가운데 한 명인 이 실장은 이 논문에서 △한국경제의 고도성장을 위해 독재는 불가피했는가 △경제발전이 과연 행복을 가져왔는가 △노사관계는 어떻게 발전해야 하나 등에 대해 자신의 주장을 직설적으로 표현하고 있어 앞으로 새 정부의 정책방향을 시사하고 있다.

이 실장은 우선 ‘한강의 기적’으로까지 불린 지난 50년간 한국경제의 고도성장에 대한 국내외의 다양한 평가를 소개하면서 “인간의 기본권과 자유가 억압되었다면 발전이 아니라 후퇴의 역사로 기록되어야 한다”며 “이 시기의 소득 증가는 발전이 아니고 양적 성장이라고 평가절하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박정희 전 대통령, 싱가포르의 리콴유(李光耀) 전 총리,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모하마드 총리 등으로 대표되는 유교적 이념에 기초한 이른바 ‘아시아적 가치’에 대해서는 “독재를 합리화하는 양두구육(羊頭狗肉)”이라고 혹평했다.

이 실장은 또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존경하는 인물조사에서 박정희가 김구와 안중근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한다”며 “‘박정희 신화’의 극복 없이는 민주주의와 발전은 요원해 보인다”고 강조했다.

이어 “몇년 전 세계 각국의 행복도 조사에서 최빈국의 하나인 방글라데시 국민들이 가장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이는 성장보다 분배가 더 중요함을 시사해준다”고 주장했다. 소득분배론을 전공한 교수 출신다운 주장으로 앞으로 새 정부의 전반적인 경제 및 복지정책의 방향을 보여주는 대목으로 풀이된다.

노사관계와 관련, 이 실장은 “국제경쟁시대에 대립적 노사관계와 지나친 임금인상 요구는 바람직하지 않고 협력적 노사관계가 절실히 요구된다”면서도 “현재의 전투적인 노사관계는 역사적인 산물로 ‘더욱 많은 민주주의’가 확립될 때 진정한 노사화합이 가능하다”고 내다봤다.

김광현기자 kk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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