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송금' 특검 피하기 꼼수?…與인사 '검찰수사 타진'배경

  • 입력 2003년 2월 9일 18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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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이규택(李揆澤) 총무가 9일 2235억원 대북 비밀송금 사건과 관련, 여권 고위관계자가 검찰수사 재개라는 새로운 해법을 타진해 왔다고 주장함에 따라 그동안 검찰수사를 거부해 온 여권의 입장이 바뀔 것인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여권이 실제 검찰수사를 검토하고 있다면 이는 “남북관계의 장래를 위해 사법심사의 대상이 돼선 안 된다”고 버텨온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검찰의 입장을 근본적으로 뒤집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이 총무가 들었다는 제안은 여권 전체의 의중이 실린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게 한나라당의 판단이다. 이 총무는 제안자가 ‘노무현(盧武鉉) 대통령당선자쪽 사람’이라고 귀띔했으나 노 당선자의 이낙연(李洛淵) 대변인은 노 당선자와의 관련성을 부인했을 뿐만 아니라 “논리적으로도 타당치 않은 얘기”라는 반응을 보였다.

민주당 정균환(鄭均桓) 총무도 “처음 듣는 얘기다. 국회에서의 비공개 증언 후 국민의 알 권리 차원에서 공개할 것은 공개할 수 있으며 국정조사나 특검, 검찰수사에는 반대한다는 당론에는 변함이 없다”며 여권 내 입장 조율 가능성을 일축했다.

따라서 이번 제안은 특검을 통해 ‘성역 없는 수사’가 이뤄질 경우 김대중 정권이 추진해온 햇볕정책의 ‘그늘’이 전면에 드러나고, 여야간의 장기 대립으로 인한 부담을 우려한 여권 일각에서 한나라당을 떠보려는 시도라는 것이 한나라당의 분석이다.

특히 한나라당은 여권이 새삼 검찰수사와 특검 유보의 ‘빅딜’을 타진하고 나온 것 자체가 수사의지보다는 갈수록 거세지는 한나라당의 특검 공세를 희석시키려는 전술적 차원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 한나라당은 수사 유보 결정을 내렸던 ‘정치검찰’이 수사를 한다해도 대북 비밀송금의 전모를 규명하지 못할 것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또한 검찰수사가 미진하면 국정조사나 특검을 할 수도 있지 않느냐는 의견이 나오고 있지만 국정조사를 통해서는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어렵고, 검찰수사를 한 뒤 특검제를 다시 하는 것은 절차도 어렵고 명분도 약해진다.

박종희(朴鍾熙) 대변인은 “검찰수사를 하더라도 현 김각영(金珏泳) 검찰총장 체제로는 제대로 수사를 할 수 없을 것이다. 새 검찰총장을 임명한 뒤 수사를 해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특히 옷로비 사건도 검찰이 수사했지만 결국 특검제를 실시했듯이 이번 사건도 검찰 수사와 상관없이 특검을 통해 마무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나라당은 여권의 수사 재개 타진과 상관없이 17일이나 25일 본회의에서 특검법안을 단독으로라도 처리할 것이라고 벼르고 있다.

박성원기자 swpark@donga.com

윤종구기자 jkmas@donga.com

▼"의혹 얼버무리기…公人태도 아니다"▼

현대상선의 2235억원 대북 비밀송금이 남북정상회담 대가였다는 의혹이 갈수록 증폭되고 있지만 정부의 핵심 당사자인 박지원(朴智元) 대통령비서실장과 임동원(林東源) 외교안보통일특보는 모호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공직자로서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책무를 망각한 처사라는 비판과 함께 침묵을 지키고는 있지만 두 사람이 뭔가 진행시키고 있을 것이라는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박 실장은 2000년 3월 문화관광부장관 시절 송호경 북한 아태평화위 부위원장과 진행했던 정상회담 예비접촉 자리에 정몽헌(鄭夢憲) 현대아산 회장, 이익치(李益治) 당시 현대증권회장이 동석했다는 보도에 대해 포괄적으로 “사실이 아니다”라고만 한 뒤 추가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대북 송금 문제는 거론 자체를 하지 말아달라”는 입장이다. 자신과 관련된 보도가 나오면 공보수석실 관계자 등을 통해 정정 보도를 요청하는 등 적극 해명에 나섰던 평소 태도에 비하면 부인의 강도가 크게 약하다는 것이 주변의 평가다.

실제 박 실장은 8일 ‘휴먼이노텍’ 이성용 대표로부터 수천만원을 받았다는 의혹과 관련해 자신이 지난달 검찰 조사를 받았다는 보도가 나오자 “98년 초 친척 상가에 이성용씨가 찾아와 1000만원의 부의금을 놓고 가기에 즉각 되돌려 준 일이 있으나 수천만원 받았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검찰 조사결과 무혐의로 종결된 일이다”고 조목조목 해명했다.

개인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이처럼 적극 해명하면서 국민적 의혹 사건은 얼버무리려하는 것은 공직자로서 선후가 잘못된 태도라는 지적이다.

2000년 당시 국정원장을 지낸 임 특보도 정상회담 전 현대의 대북 송금에 국정원이 간여했다는 보도 등 자신과 직결되는 문제 제기에 대해 9일 “내가 뭐 얘기할 것이 있겠느냐”며 입을 닫았다.

다만, 임 특보 측근들은 “공개적으로 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국회에서 결정하면 그대로 따르겠다. 숨길 것도 없고, 얘기 못할 것도 없다”며 임 특보가 직접 나서 해명할 수도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박 실장과 임 특보가 이처럼 계속 모호한 태도를 취하면서 정치권 일각에선 청와대가 노무현(盧武鉉) 대통령당선자 측과 모종의 입장 조율을 하기 위해 시간 벌기를 하는 것 아니냐는 등의 의혹도 제기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청와대 내에서는 “대북 송금은 성공한 햇볕정책의 일환이었고, 그 진상을 밝히면 현대도 망하고 남북교류도 지장을 받는다는 것이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논리다. 때문에 박 실장과 임 특보는 진상을 말하고 싶어도 하지 못할 상황이다”는 관측도 나온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나중에 불가피하게 특검제 등을 통해 사건진상이 드러나더라도 박 실장과 임 특보가 책임을 짐으로써 DJ는 ‘애써 성공시킨 햇볕정책을 다른 사람들이 다 망쳤다’고 주장할 근거가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아직은 두 사람이 입을 열 단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윤승모기자 ysm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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