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0억 수사유보 배경과 문제점

  • 입력 2003년 2월 3일 18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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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현대상선의 2235억원 대북 비밀 송금 의혹사건에 대해 고심 끝에 '수사 잠정 유보' 결정을 내린 것은 이 사건이 지닌 정치 외교적 이해관계를 고려해 먼저 '정치적'으로 해결할 문제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먼저 정부가 대북 송금 사실을 시인해 의혹의 큰 몸통은 밝혀진 상황에서 수사를 통해 세세한 사실관계를 밝혀낸다고 하더라도 '실익'이 별로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 작용했다.

또 통치행위 논란과 대북 관계 등 실정법 차원을 뛰어 넘는 폭발성 강한 난제들이 많은데다 정치권에서 국정조사와 특별검사제 등의 껄끄러운 대안까지 나온 상황도 무시할 수 없는 변수였다.

무엇보다 취임이 얼마남지 않은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당선자가 3일 "진상규명의 주체와 절차, 범위 등은 국회가 판단해야 한다"고 언급한 것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게 검찰안팎의 관측이다.

법조계에서는 그러나 검찰 수사 없는 상태에서의 진상 규명은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특히 대북 송금과정의 불법행위 등 범죄 혐의가 일정 부분 드러났는데도 검찰 수사를 사실상 '중단'하는 것은 법 절차를 무시한 행위라는 지적도 있다. 일각에서는 검찰의 직무유기라며 강하게 비판하고 있을 정도다.

현대상선의 2000년 6월 대북 송금은 정부 당국의 허가 및 신고를 거치지 않은 만큼 일단 남북교류협력법 위반에 해당한다. 북한에 보낸 돈이 남북경협 자금이라는 감사원의 발표 역시 현대상선의 일방적인 주장을 그대로 수용한 것에 불과해 실제 돈이 건네진 명목이 무엇인지, 전달과정에서 배달사고가 났거나 일부가 정관계 로비 자금 등으로 전용되지 않았는지 등에 대한 수사도 필요한 상태다. 또 정부가 대북 송금 사실을 줄곧 부인하다가 최근에야 말을 바꾼 이유와 현대상선의 대출 과정 외압 여부 등도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이렇게 상당한 범죄 정황과 수사단서가 드러난 상태라면 당연히 검찰이 수사에 착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려대 법대 장영수(張永洙) 교수는 "범죄단서가 있는 사안에 대해 국민이 의혹 해소를 요구하면 검찰은 수사에 나서는 것이 국가기관으로서 당연한 의무"라고 지적했다.

게다가 지난해 10월 자유시민연대 등 시민단체들의 고발로 이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이미 진행 중이고, 그동안 광범위한 정황 조사 및 법률 검토를 통해 상당한 수사단서를 확보한 상태라는 점도 검찰 수사의 당위성을 뒷받침한다.

또 정치권에서 논의되고 있는 국정조사나 특검제 도입은 국회에서 여야간 합의가 선행돼야 하는 만큼 수사 착수 여부를 놓고 정치공방이 이어지면 시간이 지연돼 핵심 관계자들이 증거를 은폐하거나 도피하는 사태로 비화할 수 있다. 이럴 경우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데도 의혹을 사고 있는 일부 핵심인사들에 대해서 별다른 조치가 없다는 것에 대해서도 법조계 내부에 비판적인 여론이 있다.

이상록기자 myzodan@donga.com

이태훈기자 jeff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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