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중재案과 北核위기 해법은…]美-中-日-러-IAEA반응

  • 입력 2003년 1월 5일 18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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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핵 문제를 둘러싼 관련국들의 외교전이 본격화하는 가운데 한국 정부가 잠정적인 중재안을 내놓고 각국의 의사를 타진하고 있다. ‘북한이 핵 위기의 도화선이 된 농축우라늄 핵 개발을 포기하고 대신 미국은 서면으로 북한체제를 보장한다’는 것이 중재안의 뼈대.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국제원자력기구(IAEA) 등 관련 국가 및 국제기구의 입장을 중재안을 중심으로 긴급 진단한다.》

▼미국 입장▼

“한국 등 관련국들의 중재 노력은 경청한다. 그러나 북한의 불가침조약 체결 요구는 수용할 수 없다.” 3일 거의 동시에 전해진 북한의 ‘불가침조약 체결 요구’와 한국 정부가 검토 중인 중재안 소식에 대한 미국 행정부의 반응은 명료했다.

미국은 우선 중국 주재 북한대사가 불가침조약 체결을 요구한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국무부 정례 브리핑을 통해 “불가침조약은 북핵 현안이 아니다”고 일축했다. 국무부 대변인은 “핵 계획 폐기가 선행되지 않는 한 북한과 협상이나 대화에 일절 나서지 않을 것”임을 강조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평화적 해결을 강조했다고 해서 북핵 문제를 다루는 원칙에 변화가 생긴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한 것.

조지 W 부시 미대통령도 1일에 이어 다시 한번 분명한 목소리를 냈다. 그는 ‘외교적 결판’을 강조한 지난해 12월31일의 발언과 관련해 3일 “무력이든 외교적 방법이든 미국의 결의는 같다”고 말했다. 외교적 해법이라 해서 그것이 ‘온건’ ‘유화’ ‘원칙의 양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님을 분명히 한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더 나아가 “세계는 북한이 핵 야망을 꺾도록 일관되게 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강조해 ‘미국이 원하는 방식’에 주변국들이 동참해 줄 것을 간접적으로 촉구했다.

그런 맥락에서 한국 정부가 검토 중인 중재안에 대한 반응도 냉정하다.

언론보도를 통해 윤곽이 전해진 이 중재안에 대한 미 행정부의 첫 반응은 3일(현지시간) 한 고위관리가 익명을 전제로 내놓은 “상황을 진전시키기 위한 것으로 보며 열린 자세로 논의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리처드 바우처 국무부 대변인은 “아직 한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그 같은 제안을 해온 적이 없다”고 한발 물러섰다. AFP 등 외신은 이와 관련해 한국측 중재안이 현재 북한 정권과의 접촉을 주저하는 미국측 입장과 어긋난다고 평가했다.

외교전문가들은 앞으로 전개될 주변국들과의 공조 협상에서 ‘선 핵포기, 후 대화’를 강조해 온 미국이 핵 포기와 체제보장 약속을 맞바꾸는 방식에 반대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중재안에 대한 초기 반응도 이해 당사국의 협조가 필수적인 미국이 동맹국의 제안에 대해 예우를 갖춘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선후(先後)관계’와 ‘맞바꾸기’ 사이에 다양한 중간 형태가 존재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의 중재 노력이 상당한 진전을 볼 수 있다는 전망도 많다.

이기홍기자 sechepa@donga.com


▼中 "물리적 제재 반대…대화로 해결해야"▼

북한 핵 문제에 대한 중국의 공식 입장은 ‘한반도 비핵화’와 ‘대화에 의한 평화적 해결’ 원칙이다. 북한이 핵무기를 갖는 것도 원치 않지만 북한에 대한 물리적 제재에도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국의 한 한반도 전문가는 “중국의 북핵 문제에 대한 접근법은 미국이 자국의 세계전략 및 국가이익 차원에서 이 문제를 다루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중국은 북핵 문제가 북-미간의 외교적 공방 차원에 머물 때는 준(準)당사국이지만 핵 위기가 더 고조돼 국제사회의 경제제재가 이뤄지면 핵 문제의 당사국으로 변질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 때문에 중국은 최종 순간까지도 북-미간의 타협안을 모색하려 할 것이며 유엔의 대북제재 결의안에는 반대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북한이 대화를 하자고 하는 만큼 기본적으로 미국이 움직여야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면서 “미국이 ‘선(先) 핵계획 포기’만을 주장하면서 대화를 거부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중국이 할 수 있는 역할도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국 정부가 검토 중인 중재안에 대해 “좋은 절충안이긴 하지만 미국의 태도가 변수”라며 “한국의 이태식(李泰植) 외교통상부 차관보와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 부부장간의 회담(1일)에서는 이 같은 방안이 제시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황유성특파원 yshwang@donga.com

▼日 "韓-美 대북정책 이견땐 중재 나설것"▼

일본은 한국을 비롯해 미국 중국 러시아 등과 공조해 외교적 평화적 방법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해 왔다. 대북 협상의 핵심자인 아베 신조(安倍晉三) 관방 부장관은 4일 “북한이 위험한 게임을 벌이는 것을 막기 위해 관련 당사국들과 국제사회는 냉정히 상황에 대처, 평화적 수단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정부의 이 같은 입장은 한국 정부의 중재안 제시 의도와 노선을 같이하는 것이다.

가와구치 요리코(川口順子) 외상은 4일 밤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과 전화회담을 갖고 “북한의 문제 해결을 위해 전향적으로 대응하도록 촉구하기 위해 한 미 일을 중심으로 한 관계국의 협력과 국제사회의 대응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본은 특히 대북 유화정책의 계승을 강조하고 있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당선자와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대북 강경노선이 충돌하면 북-일 수교협상 재개를 바라는 일본으로서도 좋지 않을 것으로 보고 중재 역할을 할 의사가 있음을 공언해 왔다. 북한의 핵 포기를 일본의 대북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되 한국과 미국이 대북정책에 있어서 충돌하지 않도록 주도적 중재자 구실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10일 정상회담에서도 대북정책을 위한 국제연대를 최우선 과제로 다룰 것이라고 마이니치신문은 5일 전망했다.

도쿄=조헌주특파원 hanscho@donga.com

▼러 "先 중유공급…北-美 직접 담판을"▼

러시아는 5일 모스크바를 방문한 김항경(金恒經) 외교부 차관으로부터 북한의 핵 폐기와 미국의 북한체제 보장을 상호 교환하는 내용의 한국측 중재안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김 차관과 만난 알렉산드르 로슈코프 외무부 아태담당 차관과 게오르기 마메도프 군축담당 차관은 한국이 내놓은 중재안에 관심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주한 러시아대사를 지낸 예브게니 아파나시예프 러시아 외무부 아태1국장은 “미국이 일단 중단된 대북 중유공급을 재개하고 북한도 일련의 핵 동결 해제 조치를 중단한 후 양측이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로슈코프 차관은 북한이 4일 주중 북한대사의 기자회견을 통해 미국과 대화를 할 의사가 있는 것처럼 언급한 데 대해 “이제는 미국의 태도가 중요하다”며 북-미 직접 대화를 촉구했다. 그는 “북핵 문제의 유엔 안보리 상정에 반대한다”고 덧붙여 대북 압박에 주변국을 동원하려는 데 반대함을 분명히 했다.

북핵 사태를 바라보는 러시아의 시각은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아직 입증되지 않았고 △북한의 핵 개발 재개가 반드시 군사 목적인지는 알 수 없으며 △미국도 일부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한편 관영 이타르타스통신은 4일 “북한은 미국이 중유를 공급하고 경수로를 지어주는 대신 북한은 핵 개발을 포기하기로 약속했던 1994년 제네바 기본합의 수준으로 복귀하기를 원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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