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특파원이 본 한국대선 中]"정치변화 심해 흥미진진"

  • 입력 2002년 12월 15일 18시 38분


한국 대통령선거를 취재중인 파이낸셜 타임스의 앤드루 워드 기자. -박경모기자
한국 대통령선거를 취재중인 파이낸셜 타임스의 앤드루 워드 기자. -박경모기자
한국의 선거 유세는 다채롭고 활기찬 인상을 준다. 영국과 비교해보면 청중은 야유를 잘 하지 않는 편이다. 유세 정치인에 대해 비교적 예의바르고 정중한 편이다. 영국에서는 후보 연설 도중 상대편 지지자들이 그를 비판하면서 소리를 질러대거나 플래카드를 흔들며 유세를 방해하곤 한다. 한국에서는 그런 일이 적다. 그러나 유세에 나온 사람들 대부분이 당원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노무현(盧武鉉) 후보와 정몽준(鄭夢準) 후보의 단일화는 확실히 흥미롭고 보기 드문 일이었다. 이것은 한국 정치가 얼마나 (후보간) 동맹에 따라 유동적인지를 보여줬다. 그러나 선거를 취재하는 기자 입장에서는 퍽 흥미진진했다.

이회창(李會昌) 후보와 노무현 후보를 이념적으로 구분한다면 이 후보는 중도 우파, 노 후보를 중도 좌파라고 할 수 있다. 둘 다 온건한 중도주의자다. 아무도 급진적이지 않다. 이 후보는 더 보수적이고, 노 후보는 더 자유주의적이지만 경제 노동정책에서는 오히려 이 후보가 더 자유주의적이고, 노 후보는 더 보수적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지역주의가 이념을 초월하곤 해 각 후보의 이념을 꼭 집어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

사람들은 노 후보에 대해 보통사람들의 어려움을 이해하는 ‘국민 후보’라고 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지도자로서의 경험 부족을 걱정한다. 이 후보는 반대로 보통사람들과는 덜 연계된 것처럼 보이지만 상대적으로 경험은 더 많다.

대북정책에서 이 후보는 아직 가장 보수적이거나 강경한 입장이고, 노 후보는 가장 자유적이거나 진보적 입장이다. 그러나 이 후보가 노 후보 쪽으로 움직여가면서 차이가 줄었다. 반미 정서 탓에 이 후보가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대북 강경책에 너무 가까운 것처럼 보이는 것이 위험하게 됐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경제정책에 있어 두 후보 모두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자유시장경제 개혁을 계속할 것으로 믿는다. 그러나 차이점은 있다. 이 후보는 노동조합에 좀더 강경한 한편 민영화를 가속화하고 기업 부문의 규제를 줄일 것으로 기대된다. 노 후보는 노동자들에 좀 더 호의적이고 재벌에 대한 규제를 강화할 것이다.

누가 당선돼도 모두 북한에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도록 압력을 넣겠지만 이 후보가 더 강경한 노선을 취할 것이다. 노 후보는 기본적으로 햇볕정책의 지속을 옹호하는 반면 이 후보는 미국의 강경책에 좀더 공감한다. 그러나 반미주의가 정치 지형도를 극적으로 바꿨다. 2개월 전만 해도 이 후보의 강경책은 자산이었지만 지금은 부담이다.

반미감정이 확산되면서 노 후보는 정책의 주도권을 잡았다. 이 후보는 마지못해 노 후보의 진보정책에 가깝게, 미국과는 거리를 두게 됐다. 누가 선거에서 이겨도 워싱턴과의 관계를 복원해야 하는, 매우 어렵고 민감한 일을 분명히 맡게 될 것이다.

몇주 전 나는 이 후보가 거의 확실한 우승자이며 노 후보는 경쟁에서 밀려났다고 기사를 쓴 적이 있다. 그러나 지난달이 되면서 모든 게 바뀌었고, 현재까지 선거 판도는 승패를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다. 한국 정치는 매우 빠르게 움직이고, 가변적이라고 한다. 19일까지 뭔가 변하기에는 아직 시간이 남았다. -앤드루 워드 기자는 한국에 온 지 15개월이 됐다. 이번 선거는 그가 취재하는 첫 한국 대선이다.

앤드루 워드(파이낸셜 타임스 서울 특파원)

정리=곽민영기자 havef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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