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후보와 정몽준(鄭夢準) 후보의 단일화는 확실히 흥미롭고 보기 드문 일이었다. 이것은 한국 정치가 얼마나 (후보간) 동맹에 따라 유동적인지를 보여줬다. 그러나 선거를 취재하는 기자 입장에서는 퍽 흥미진진했다.
이회창(李會昌) 후보와 노무현 후보를 이념적으로 구분한다면 이 후보는 중도 우파, 노 후보를 중도 좌파라고 할 수 있다. 둘 다 온건한 중도주의자다. 아무도 급진적이지 않다. 이 후보는 더 보수적이고, 노 후보는 더 자유주의적이지만 경제 노동정책에서는 오히려 이 후보가 더 자유주의적이고, 노 후보는 더 보수적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지역주의가 이념을 초월하곤 해 각 후보의 이념을 꼭 집어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
사람들은 노 후보에 대해 보통사람들의 어려움을 이해하는 ‘국민 후보’라고 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지도자로서의 경험 부족을 걱정한다. 이 후보는 반대로 보통사람들과는 덜 연계된 것처럼 보이지만 상대적으로 경험은 더 많다.
대북정책에서 이 후보는 아직 가장 보수적이거나 강경한 입장이고, 노 후보는 가장 자유적이거나 진보적 입장이다. 그러나 이 후보가 노 후보 쪽으로 움직여가면서 차이가 줄었다. 반미 정서 탓에 이 후보가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대북 강경책에 너무 가까운 것처럼 보이는 것이 위험하게 됐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경제정책에 있어 두 후보 모두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자유시장경제 개혁을 계속할 것으로 믿는다. 그러나 차이점은 있다. 이 후보는 노동조합에 좀더 강경한 한편 민영화를 가속화하고 기업 부문의 규제를 줄일 것으로 기대된다. 노 후보는 노동자들에 좀 더 호의적이고 재벌에 대한 규제를 강화할 것이다.
누가 당선돼도 모두 북한에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도록 압력을 넣겠지만 이 후보가 더 강경한 노선을 취할 것이다. 노 후보는 기본적으로 햇볕정책의 지속을 옹호하는 반면 이 후보는 미국의 강경책에 좀더 공감한다. 그러나 반미주의가 정치 지형도를 극적으로 바꿨다. 2개월 전만 해도 이 후보의 강경책은 자산이었지만 지금은 부담이다.
반미감정이 확산되면서 노 후보는 정책의 주도권을 잡았다. 이 후보는 마지못해 노 후보의 진보정책에 가깝게, 미국과는 거리를 두게 됐다. 누가 선거에서 이겨도 워싱턴과의 관계를 복원해야 하는, 매우 어렵고 민감한 일을 분명히 맡게 될 것이다.
몇주 전 나는 이 후보가 거의 확실한 우승자이며 노 후보는 경쟁에서 밀려났다고 기사를 쓴 적이 있다. 그러나 지난달이 되면서 모든 게 바뀌었고, 현재까지 선거 판도는 승패를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다. 한국 정치는 매우 빠르게 움직이고, 가변적이라고 한다. 19일까지 뭔가 변하기에는 아직 시간이 남았다. -앤드루 워드 기자는 한국에 온 지 15개월이 됐다. 이번 선거는 그가 취재하는 첫 한국 대선이다.
앤드루 워드(파이낸셜 타임스 서울 특파원)
정리=곽민영기자 havef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