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핵시설 가동 재개]한반도 '제2핵위기' 먹구름

2000년 2월 인공위성에 잡힌 북한 영변 지역의 핵시설. - 동아일보 자료사진

북한이 핵동결조치 해제를 선언하고 전력생산에 필요한 핵시설의 가동과 건설을 재개할 것이라고 발표한 것은 1994년 북-미간 제네바 기본합의를 파기하겠다고 공식 선언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북한이 8년 만에 제네바 기본합의를 파기하고 핵시설 재가동을 선언한 것은 특유의 ‘벼랑끝 전술’을 다시 발휘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아직은 구체적인 계획을 밝히지 않았지만 핵동결조치 해제 선언에 이어 미국과의 대결구도를 만들어간다면 한반도에 다시 한번 핵 위기가 닥칠 가능성도 없지 않다.

▽핵동결 해제 뭔가〓북한 외무성 대변인의 담화에서 주목할 부분은 “50만t 중유제공을 전제로 해 취했던 핵동결을 해제하고 전력생산에 필요한 핵시설의 가동과 건설을 즉각 재개한다”는 대목이다. 이는 핵동결 해제 이유가 미국의 중유중단 때문임을 분명히 밝히면서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도 개략적으로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94년 제네바 기본합의를 통해 평북 영변지역의 5㎿ 흑연감속로 가동을 중단하고 50㎿와 200㎿ 발전소의 건설도 중지했다. 북한은 당시 이를 전력생산용이라고 주장함으로써 미국으로부터 100만㎾급 경수로 2기 건설을 약속 받았다.

▼관련기사▼

- [北 핵시설 가동 재개]한국정부 대응
- [北 핵시설 가동 재개]미국정부 대응

따라서 북한이 핵동결을 해제하는 것은 이 3곳의 재가동 및 건설을 재개한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또 원자로에서 빼낸 폐연료봉에서 플루토늄을 분리해내는 작업을 하는 방사화학실험실도 재가동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북한이 핵동결 당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주도하에 봉인작업(canning process)을 마치고 수조 속에 보관 중인 8000여개의 폐연료봉을 다시 꺼낸다는 것으로 확대 해석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폐연료봉을 다시 꺼내 플루토늄 추출에 나선다는 것은 전기 생산이 목적이 아니라 ‘핵 대결 자세’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 외무성 대변인의 담화가 중유제공 중단과 전력생산 차질을 강조한 것을 보면 폐연료봉 봉인을 뜯겠다는 얘기는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외무성 대변인이 ‘평화적 해결’과 함께 핵동결 여부가 미국의 태도에 달려있다고 분명히 밝힌 점으로 볼 때 극단적인 조치는 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핵시설을 재가동해서 새로 얻게 되는 폐연료봉을 어떻게 처리할지는 또 다른 문제다.

▽앞으로 어떻게 되나〓하지만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는 그럴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해결책을 찾을 것이 분명하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북한이 제네바 기본합의를 파기할 경우 매년 최소 50기의 핵탄두를 제조할 수 있는 분량의 플루토늄을 수년 내로 생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CIA는 또 북한이 영변 핵시설에 보관 중인 사용 후 연료를 재처리하면 제네바 기본합의를 체결하기 전에 이미 제조한 것으로 추정되는 1, 2기의 핵탄두 외에도 핵무기 몇 개를 만드는 데 충분한 플루토늄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북한이 일단 핵동결 해제를 밝히면서도 중유공급 중단에 따른 북한 행동의 정당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외무성 대변인의 담화가 오히려 협상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다만 북한의 이번 조치가 고농축우라늄 핵개발 계획이 밝혀진 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 움직임에 강공으로 맞서기 위한 것이라면 앞으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미국은 북한이 우선적으로 핵개발 계획을 포기해야 한다는 입장이어서 북한의 핵동결 해제 움직임과 미국의 강경한 태도가 맞물릴 경우 94년에 거론됐던 ‘북폭(北爆) 계획’이 다시 등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김영식기자 spear@donga.com

북한 핵 관련 일지
1974.9	북한, 국제원자력기구(IAEA) 가입
1991.12.31	남북한 한반도비핵화 공동선언 채택
1992.4.10	북-IAEA 핵안전조치협정 발표
5.23∼6.5	IAEA, 북한보고서(플루토늄 90g 신고) 검증 사찰 실시
12.12	IAEA, 핵폐기물 보관시설 의심 2곳 접근 요구, 북 1곳에 대해 육안사찰 허용
1993.3.12	북,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선언
1994.7.8∼10	3차 고위급회담(제네바), 북-미 기본합의문 체결
11.1	북, 핵활동 동결 선언
1995.3.9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협정 서명
1999.3.16	북-미 금창리 지하시설 사찰 타결
5.18∼24	미국, 금창리 방문단 현장 방문(핵시설과 무관 결론)
2000.2.2	북, 경수로 지연으로 제네바합의 파기 경고
2.3	경수로 본공사 시작
5.25∼27	미, 금창리 2차 사찰
2002.8.13	북 외무성 담화, 제네바합의문 파기 갈림길
9.16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 북 핵무기 보유 주장
10.3∼5	켈리 미 특사 방북
10.17	북 핵개발 시인, 한-미 공동발표
12.12	북,핵동결 해제 선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