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후보 경실련 정책토론 "재벌상속-증여세 대폭 강화"

  • 입력 2002년 10월 8일 18시 54분


민주당 노무현 대통령후보(왼쪽)가 경실련 주최 토론회에서 자신의 대기업 정책을 밝히고 있다. - 박경모기자
민주당 노무현 대통령후보(왼쪽)가 경실련 주최 토론회에서 자신의 대기업 정책을 밝히고 있다. - 박경모기자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대통령후보는 8일 “대기업이 계열 금융회사에서 불법과 편법을 동원해 돈을 빼내가면서 금융질서를 어지럽히면 정부가 나서서 강제로 금융회사를 대기업 계열에서 떼어낼 수 있도록 ‘계열분리 청구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노 후보는 또 “지금까지는 미리 정한 10여 가지 유형에 해당할 경우에만 상속세와 증여세를 물릴 수 있었지만 내가 집권하면, 상속했다는 사실만 확인되면 무조건 상속 증여세를 매길 수 있는 ‘완전 포괄주의 조세제도’를 도입해 재벌들의 편법 상속을 원천적으로 막겠다”고 말했다.

노 후보는 이날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주최로 4·19혁명 기념도서관에서 열린 ‘경제정책토론회’에 참석해 이런 내용의 대기업 정책 공약을 밝혔다.

노 후보는 “현 정부 들어 추진한 재벌개혁 정책이 적잖은 성과도 거뒀지만 정권 말기로 접어들면서 갖가지 규제가 풀리고 재벌들도 과거의 ‘선단식·황제식’ 경영으로 회귀하고 있다”며 강도 높은 재벌개혁 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특히 여야간 논란으로 국회에 계류 중인 증권집단소송제도에 대해서도 “조속하게 시행돼야 하며 우선 증권분야에 국한돼 있지만 점진적으로 대상을 확대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혀 재계의 시행보류 주장을 일축했다.

노 후보는 또 재계의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 주장에 대해 “이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자산 2조원 이상 대기업에 적용되는 상호출자와 상호지급보증 금지제도는 오히려 중장기적으로 대상을 넓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 후보는 특히 “공정거래위원회만 갖고 있는 공정거래법 위반에 대한 전속 고발권을 민간기업도 소송을 낼 수 있도록 조치해 경영을 외부에서 감시하는 활동을 촉진하겠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노 후보는 금융감독위원장과 공정거래위원장 임명 때 반드시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치도록 해 감독기관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높인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노 후보가 이날 발표한 대기업 정책은 재계가 줄기차게 요구한 규제완화 주장을 정면 반대하는 내용이어서 재계의 반발이 예상된다.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

이승헌기자 ddr@donga.com

▼당내분 입장 단호▼

“필요하면 뺄셈도 해야 한다.”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대통령후보는 8일 경실련 토론회에서 당 내분 사태에 관한 대응책을 묻는 질문에 ‘뺄셈 정치론’을 내세웠다. 당내 일각에서 거론되는 탈당예비군들에 대한 “갈 테면 가라”는 경고였다.

그는 비노(非盧)-반노(反盧)진영의 ‘후보 단일화론’을 겨냥해 “일부에서는 덧셈의 정치를 하라고 하는데 보태서 안 되는 사람들을 보태면 갈등과 분열의 요인이 된다”며 “원칙 있는 덧셈을 해야 하며 가치관을 달리하는 사람들이 따로 가겠다면 감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 후보는 이에 앞서 “집권하면 ‘대통령’자 앞에 어떤 수식어가 붙길 원하느냐”는 질문에 “민주화 시대 이후로는 통합으로 가야 한다”며 ‘통합 대통령’을 지향한다고 밝혔다.

한편 노 후보는 이날 최근 언론의 대통령후보 토론회 관련 보도에 대해 불만을 표출했다. 그는 “(노 후보의) 많은 개혁적 공약이 즉흥적이고 파격적이어서 사회 구성원간 상충되기도 한다”는 지적에 “많은 국민이 여론조작에 말려들고 있다”고 반박했다.

그는 TV토론을 통해 지지도를 올릴 수 있다고 보고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대통령후보, 무소속 정몽준(鄭夢準) 의원의 TV 토론 참여를 촉구했다.

이승헌기자 ddr@donga.com

▼재계 "시장원리 무시한 발상"▼

전경련과 재계는 노 후보가 공약으로 내건 대기업 계열 금융기관의 계열분리 청구제도에 대해 ‘시장원리를 무시한 파격적인 발상’이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전경련 신종익 상무는 “계열 금융기관 분리를 명령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는 그동안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에서 주장해 오던 것을 그대로 본뜬 것으로 시장원리에 어긋나는 데다 부작용이 더욱 클 것”이라고 주장했다.

신 상무는 또 “예를 들어 삼성생명이 너무 크니까 삼성그룹에서 분리하겠다고 하면 다른 대기업에서 삼성생명을 인수해야 하는데 다른 대기업이 인수할 여력이 없으면 공기업으로 넣겠다는 발상 아니겠느냐”며 제도의 실효성에 의문을 표시했다.

전경련은 특히 재벌의 편법상속을 막기 위해 상속 증여세에 대해 완전포괄주의제도를 도입하겠다는 노 후보 공약에 대해서도 공약(空約)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고 비판했다. 전경련측은 “학계에서는 상속세 제도 자체를 폐지하자는 마당에 이런 공약을 내는 것은 시대에 역행하는 것이다”고 비난했다.

한편 삼성 LG 등 주요 대기업 관계자들은 “증권 집단소송제도나 출자총액 제한제도는 정부에서도 부작용 때문에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하고 있는 사안인데 노 후보가 이를 밀어붙이는 것은 자신의 개혁성을 돋보이게 하려는 의도인 것 같다”고 분석했다.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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