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캠프 돕는 지식인들

  • 입력 2002년 10월 3일 15시 55분


대통령 선거가 가까워지면서 지식인들의 발걸음이 분주해지고 있다. 이회창, 노무현, 정몽준, 권영길 등 각 후보들의 진영에는 이미 상당수의 지식인들이 참여해 정권 창출을 위해 뛰고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의 전문화를 위해 또는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전문 지식인들을 끌어들인 것은 오래 된 일이지만 정권의 창출 과정부터 지식인들이 자발적으로 적극 참여한 것은 군사정권이 물러나고 문민정부가 태동하던 1992년 대선부터였다. 김영삼 후보 캠프의 이른바 '동숭동 임팩트 코리아'에는 많은 지식인들이 참여해 정책 입안에 관여했고 서울대 박재윤 정종욱, 고려대 서진영 교수 등 상당수의 지식인들이 김영삼 정권 출범 후 요직을 맡아 정책의 시행까지를 담당했다.

김대중 정권의 경우도 집권 이전부터 최장집(고려대·정치학) 한상진(서울대·사회학) 황태연(동국대·사회학) 김태동(성균관대·경제학) 교수 등이 정책자문역을 맡았고 이들 대부분은 현재도 현 정권과 직 간접적 관계를 맺고 있다.

사람들이 이들에게 주목하는 것은 바로 이들이 국가의 장래를 좌우하는 정책의 입안과 시행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 하지만 한편으로는 전문지식인으로서의 본분을 잊고 권력의 향배에 따라 좌우되거나 학문적 소신없이 이 진영 저 진영을 기웃거리는 기회주의자들도 적지 않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캠프는 한 번 대선을 치러 본 바 있어 일단 양적인 측면에서 타 후보들의 부러움을 산다. 곽상경(고려대·경제학) 이인규(서울대·생물학) 유세희(한양대·정치학) 교수와 박윤흔 전 경희대 교수(법학·전 환경처장관), 이강혁 전 한국외국어대 총장(법학)이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정책자문단의 규모는 전국적으로 700∼800명이나 된다. 정치학 분야에 백영철(건국대) 정종욱(아주대), 경제학 분야에 유장희(이화여대) 박원암(홍익대), 경영학 분야에 정구현(연세대) 남상구(고려대), 농림 분야에 정하우(서울대) 교수, 건설교통 분야에 홍성웅 전 건설교통연구원 원장 등이 참여하고 있다.

민주당 노무현 후보 캠프에는 진보적 성향의 지식인들이 많이 참여하고 있다. 국민대 김병준 교수(행정학)가 좌장을 맡고 있는 정책자문단에서 노 후모와 직접 대면하며 자문역을 하고 있는 지식인은 12개 분야 총 80여명. 경제 분야에 유종일(KDI국제대학원교수) 신봉호(시립대) 이정우(경북대), 외교안보 분야에 서동만(상지대), 분권 분산 분야에 성경륭(한림대), 행정 분야에 윤성식(고려대) 교수 등이 있다. 하지만 일찍부터 온라인을 통한 사이버자문단을 활성화해 왔기 때문에 이들까지 합치면 1500명이 넘는다는 것이 노 후보측의 주장이다.

정몽준 후보의 캠프에는 정 후보의 손위 처남인 김민영 한국외국어대 교수(경영학)가 정책자문역으로 지식인들을 꾸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본인은 '자원봉사 차원'이라고 주장한다. 대학교수 50여명으로 구성된 자문단이 꾸려졌지만 10월말경 신당 창당까지는 참여자를 밝힐 수 없다는 것이 정 후보측의 입장이다. 서울대 교수 출신으로 국무총리를 지낸 이홍구씨가 정 후보의 후원회장을 맡고 있고 외교 및 행정 경험이 풍부한 학계의 K, H, O, P씨 등이 자문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 후보의 중앙고 및 서울대 동기인 손호철 서강대 교수(정치학)도 캠프의 손짓을 받고 있다.

이념적 지향이 가장 뚜렷한 민주노동당의 권영길 후보 캠프에도 상당수의 지식인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른바 '대선공약개발단'의 구성원 100여 명 중 3분의 2가 현직 교수다. 장상환(경상대·경제학) 조현연(성공회대·정치학) 유팔무(한림대·사회학) 강정구(동국대·사회학) 조영건(경남대·경제학), 김석준(부산대·사회학) 교수, 이성우 전 과학기술노동조합 위원장(한국생명공학연구원) 김석연 민변 사무처장(변호사) 등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공약개발이 끝나는 10월 중순 경 이 조직을 정책자문단으로 확대 개편할 예정이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민주주의가 발달하면서 지식인들의 정치참여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실제로 일찍부터 민주주의가 발달한 서구의 경우 지식인들은 자신의 전문적 지식을 바탕으로 정권의 창출부터 정책의 시행까지 깊숙이 관여한 후 정권의 퇴진과 함께 연구소나 대학으로 물러나 연구를 계속하다가 다시 기회가 되면 정치에 참여하기도 한다. 미국의 경우 보수적 성향의 후버연구소와 헤리티지재단, 진보적 성향의 브루킹스연구소는 바로 정계와 학계를 잇는 싱크탱크 역할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지식인들의 정치참여에 대한 기대와 우려는 공존한다. 전문가로서 정책대안을 마련하는 데 도움이 되는 한편, 지식인들이 본분을 잊고 권력과 함께 타락해 가는 모습을 실제로 많이 봐 왔기 때문이다. 또 학계에 복직한 뒤에 아무런 학문적 업적없이 과거의 '화려했던 시절'만을 그리워 하면서 어느 캠프에서건 다시 불러주기만을 기다리는 이들도 적지 않다. 여기에 학계 출신으로 '현실 정치'에 뛰어들어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가 극히 드물다는 것도 한국적 현실이다.

김형찬기자.철학박사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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