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의원이 ‘뒷거래 밀사’로 지목한 요시다 사장은 재일동포 2세로 일본의 대표적인 대북 창구역할을 해 왔다. 그는 북한에 만들어 놓은 인맥을 활용해 현대그룹이 금강산 관광사업을 따내는 데 기여한 두 사람의 일본측 밀사중 한명이었다.
그의 부친은 함경도 출신으로 일본에 귀화한 친북인사 요시다 다쓰오(90년 사망). 부친은 1952년 신일본산업을 만들어 철강재 광물 수산물 등을 북한에 수출했다. 그러면서 김일성(金日成) 주석과도 친분을 유지해 70년대부터 북-일간 비밀파이프 역할을 해 왔다. 부친이 숨진 뒤 요시다 사장은 아버지가 만든 회사와 북한 인맥, 그리고 대북밀사역할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그는 1년의 절반은 평양에서 보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그룹은 97년 초 일본 아사히신문 서울지국장을 지낸 아사히신문의 고바야시 게이지(小林慶二·67·규슈국제대 교수)에게 금강산 사업을 따내기 위해 북한 고위층과 다리를 놓아달라고 부탁했다. 그가 북한의 아태평화위 김용순(金容淳) 위원장과 친분이 깊다는 것을 알고 한 부탁이었다.
고바야시씨가 현대측의 제안을 전화나 팩스로 받으면 이를 평양으로 직접 가서 전달한 사람이 바로 요시다 사장이었다. 요시다 사장은 평양측의 반응을 직접 갖고 와 고바야시씨에게 전달했고, 고바야시씨는 이를 현대측에 알려줬다. 요시다 사장은 현대를 위해 수차례나 평양과 도쿄(東京)를 오갔다. 두 사람은 80년대 중반부터 외무성 관료들과 함께 만든 비공식 북한접촉 서클의 멤버로 아주 친한 사이였다.
두 사람은 98년 6월 정주영(鄭周永)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소떼를 끌고 판문점을 통해 방북했을 때도 미리 북한으로 들어가 정 회장을 기다릴 정도로 북한과 현대그룹 양쪽에서 신뢰를 받았다.
요시다 사장은 90년 3월 일본과 북한이 처음으로 파리의 개선문 근처에 있는 조그만 호텔에서 첫 비밀접촉을 했을 때와 95년 일본 자민당 가토 고이치(加藤紘一) 간사장이 대북 쌀지원을 할 때도 대북밀사역할을 하기도 했다.
김영식기자 spe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