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이산상봉]93세 김혜연씨 北처자식과 만나

  • 입력 2002년 9월 16일 18시 44분


“오래 사니까 이렇게 만나는구려. 살아 있어주어서 고맙소….”

남측 김혜연씨(93)는 16일 금강산여관에서 북한의 동갑내기 아내 박종정 할머니와 아들 인식(66) 영식씨(63), 딸 현식씨(60)를 마주하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구순(九旬)을 넘긴 백발의 노부부는 거칠어진 손으로 서로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한동안 말을 잊고 서로의 모습을 바라보는 두 사람은 52년간의 흔적을 찾으려고 애쓰는 모습이었다.

김씨는 자식들이 건강을 걱정하자 “아흔살이 넘어 시작된 심근경색증으로 두세 차례 쓰러지기도 했다”며 “그러나 북한에 처자식이 살아있다는 소식을 들은 뒤 너희들을 만난다는 일념으로 버텨왔다”고 말했다.

평안남도에서 목장을 운영하다가 전쟁 통에 피란길에 나선 그는 근처의 여동생 집에서 가족들과 만나기로 약속했지만 이미 인민군이 여동생 집을 접수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뒤따라오기로 했던 아내와 어린 자식들은 이튿날까지도 오지 않았다. 그 길로 홀로 남하한 김씨는 부산에서 10년간 머물렀다. 뒤늦은 나이에 새 가정을 꾸리고 슬하에 2남1녀를 두었지만 새로 만난 남측 아내는 88년에 세상을 떠났다.

남측 임황월씨(69·여)는 어머니 조삼씨(90)의 품에 안겨 반세기 전의 따스함을 느꼈다. 머리를 쓰다듬는 어머니를 끌어안은 임씨는 동생들 앞이라는 것도 잊은 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임씨가 홀로 가족과 떨어진 것은 51년7월. 4남매의 맏딸로 황해도 연백에 살던 임씨는 당시 인민군들이 젊은 남녀를 군으로 끌어간다는 소문에 놀란 부모님의 성화로 홀로 피신했다.

인근의 용매도로 피신을 갔던 그는 열흘쯤이면 가족을 만날 것으로 생각했지만 전쟁의 포화는 가라앉지 않았다. 그는 먹을 것을 찾아 연평도를 거쳐 여수까지 내려갔고, 결국 가족들과 기나긴 이별을 하게 됐다.

이날 금강산을 찾은 남측 가족 99명은 북측 가족과 친척 253명을 만나 단체상봉과 공동만찬을 한 뒤 숙소인 해금강호텔에서 상봉 첫날밤을 보냈다. 양측 이산가족은 이틀째인 17일 오전에는 금강산여관에서 개별상봉을 한 뒤 오후에 삼일포를 함께 구경한다. 김영식기자 spear@donga.com

금강산〓공동취재단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