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권위 vs 사법독립' 정면충돌

  • 입력 2002년 9월 6일 18시 40분


국회 법사위가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을 직접 국회 국정감사장에 세워 질의답변에 응하도록 결정한 것은 국회의장의 당적이탈과 당-정 분리 등으로 국회의 위상과 자율성이 강화되고 있는 추세를 반영한 것이다.

실제 대법원장과 헌재소장이 국감 때 인사말만 한 뒤 증인선서도 하지 않고 퇴장해온 관행은 매년 두 사법기관에 대한 국정감사 때마다 논란이 돼왔다. 법사위 소속의 일부 의원들은 “왜 피감기관의 장이 직접 나오지 않느냐. 증인선서라도 해야 한다”며 문제를 제기해왔고, 그때마다 여당 의원들이 “관행이 아니냐”며 무마해 매듭을 짓지 못한 채 넘어갔다.

대법원과 헌재측은 이에 대한 공식 견해를 밝힌 적이 없지만 “사법권 독립의 침해를 막는다는 차원에서 당연한 일”이라는 분위기였다. 최고재판기관의 장이 직접 답변에 나설 경우 재판에 영향을 줄 수도 있는 데다 국정감사가 사법행정에 관한 감사인만큼 두 기관의 행정업무를 총괄하는 법원행정처장과 헌재사무처장이 국감에 응하는 것이 국감취지에 부합한다는 게 두 기관의 논리였다.

그러나 국회 법사위 소속 의원들은 두 사법기관의 장이 국감에 응하지 않았던 것은 국회의 권위를 무시했던 ‘유신독재의 잔재’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조순형 의원은 “유신 이전에는 대법원장이 증인선서를 하고 직접 국정감사에 임했다”면서 “사법기관의 장이 국감에 응하지 않는 관행은 유신독재가 국회의 권한을 축소시키려는 의도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논란은 입법부와 사법부간의 충돌로 비화할 소지가 크지만 3권 분립 원칙을 재정립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논쟁이란 시각도 있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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