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말 공직기강 흔들]위원회 파견 공무원 좌불안석

  • 입력 2002년 8월 11일 18시 36분


두 달 뒤면 법적인 활동이 끝나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는 요즘 이상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

8일 서울 종로구 수송동 진상규명위 사무실에서 일하는 한 파견 공무원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이 직원은 전화를 받더니 급히 사무실 밖으로 나가 10여분간 통화한 뒤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같은 사무실의 민간 조사관은 “아마 자신이 복귀할 부처에서 온 전화였을 것”이라며 “최근 위원회에 파견 나와 있는 공무원들 중에 소속 부처의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신경을 쓰는 사람이 부쩍 많아졌다”고 말했다.

중앙 부처에서 파견된 한 직원은 “아무래도 위원회 활동 종료 시한이 다가오면서 돌아갈 자리에 신경이 쓰이는 것은 사실”이라며 “어떻게 될 것인지 알아보고 다닌다”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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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권말 곳곳 누수현상

김대중(金大中) 정부 들어서 의욕적으로 만든 각종 위원회에 파견된 공무원들이 정권 말기가 되면서 자신들이 돌아갈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좌불안석이다. 일부 파견 공무원들은 위원회 취지에 어울리지 않는 행동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진상규명위의 한 상임위원은 이달 초 단행된 인사에서 제2건국위원회 1급 자리로 전보 발령됐다. 이 위원은 별정직 공무원이기 때문에 진상규명위가 활동을 종료하고 해산되면 공직생활을 마감해야 할 처지였다.

활동 시한을 2개월 앞두고 사건 수사를 지휘하며 보고서를 작성해야 할 상임위원이 자리를 옮긴 것에 대해 유가족들은 분노했지만 진상규명위 공무원들은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이렇게 근무 분위기가 해이해진 가운데 본연의 임무마저 방기하는 공무원들도 있다.

지난달 서울 시내 한 경찰서의 수사관 A씨(32)는 과대광고를 한 혐의로 40대 의료인을 조사하다가 전화 한 통을 받고 몹시 기분이 상했다. 전화를 건 당사자는 부패방지위원회 고위 공무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뒤 조사 대상자를 잘 봐주라고 고압적으로 말했다는 것.

A씨는 “공무원 비리를 방지하기 위해 만든 부패방지위 공무원이 그런 청탁을 하는걸 보고 솔직히 가슴이 답답해졌다”며 “만일 그 위원회가 정권 초기에 만들어졌고 아직도 정권의 임기가 많이 남았다면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었겠느냐”고 한숨을 쉬었다.

참여연대 투명사회팀 이재명 팀장은 “성실 복무의 의무 같은 공무원 윤리나 기본 강령을 어기는 행동에 대해서는 제재를 가하는 등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며 “이런 위원회들이 정권이 바뀌고도 제대로 기능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황진영기자 buddy@donga.com

민동용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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