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北 의도에 또 말려드는가

  • 입력 2002년 8월 4일 17시 44분


어제 끝난 금강산 실무접촉에서 남북은 제7차 장관급회담의 시기와 의제에 합의하고 부산 아시아경기에 북한이 참가하기로 하는 등 5개항의 공동보도문을 내놓았다. 이번 회담에 임하는 북측의 태도는 매우 적극적이었다고 한다. 이로써 꽉 막혔던 남북대화의 숨통은 일단 트이게 됐다.

그러나 우리 대표단이 출발 전부터 그토록 다짐했던 서해교전에 대한 북측의 사과 등 책임 있는 조치를 받아내는 데에는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북측 대표는 기조발언에서 유감 표시와 재발방지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했다지만 이는 공동보도문에 포함되지 않고 구두(口頭)로 한 것일 뿐 지난달 25일 전화통지문에서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한 수준이다. 짐작은 했지만 정부가 서해교전에 대한 책임 문제를 이런 식으로 어물쩍 넘겨버리려는 것은 또 한번 국민적 비판을 받을 일이다.

나아가 “서해교전에 대한 북측 입장은 북-유엔사간 장성급회담에서 구체적으로 나올 것”이라고 한 우리측 대표의 설명은 최근 상황의 본질을 외면한 것이라 하겠다. 장성급회담은 원래 유엔사측이 서해교전 직후 제의했던 것을 북한이 한달 동안이나 무시하다가 이번 실무접촉이 시작되던 날 갑자기 역제의해온 것이다. 서해교전의 책임을 호도하고 북방한계선(NLL) 문제를 대미(對美) 공세의 소재로 활용하려는 북한의 ‘의도’가 엿보인다. 그럼에도 이 같은 사실을 당연히 알고 있을 정부 대표가 서해교전 문제를 장성급회담에 떠넘긴 것은 정부가 남북대화 재개에만 급급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우리는 어차피 장관급회담이 열리게 된 만큼 그동안 훼손됐던 남북한간의 신뢰가 회복되고 양측 관계가 미래지향적으로 발전되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정부가 눈앞의 성과에 매달려 원칙없이 오락가락해서는 북측의 의도에 말려드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국민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이런 식의 대북정책은 한계가 있음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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