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金大中 대통령 왜 서리 고집하나

  • 입력 2002년 8월 2일 18시 08분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이번에도 국무총리서리를 임명하려는 모양이다. 인선, 청문회, 인준 절차를 모두 마치려면 또 한 달쯤 걸릴 것이다. 정부조직법에 따라 총리직무대행을 임명하면 ‘총리 부재(不在)’ 상태를 즉각 해소하고 국정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는데도, 김 대통령이 위헌 논란까지 무릅쓰고 왜 이렇게 돌아가려 하는지 의아스럽다. 총리직무대행 임명엔 한나라당도 긍정적이어서 정치적 논란의 소지도 적다.

청와대측이 내세우는 논거는 다소 옹색하다. 장상(張裳) 총리 임명동의안 부결은 정부조직법에 규정된 ‘사고(事故)’에 해당되지 않아 총리직무대행을 임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총리서리제도는 어디에 규정돼 있다는 얘기인가. 헌법은 물론 정부조직법에도 없다. 오히려 헌법은 대통령의 경우 ‘유고(有故)’는 물론 ‘궐위(闕位)’시에도 권한대행제도를 인정하고 있다. 이를 준용하면 총리직무대행 임명이 헌법의 취지에 더 부합하는 측면이 있다.

현 정권 들어서도 내각이 총리직무대행 체제로 운영된 전례가 있다. 2000년 5월 당시 박태준(朴泰俊) 총리가 물러난 직후 이헌재(李憲宰) 재정경제부장관이 사흘간 총리 직무를 대행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총리 궐위’ 상태인 것은 마찬가지인데, 그때는 총리직무대행 체제가 가능하고 지금은 가능하지 않은 이유도 납득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김 대통령이 총리서리 임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면 중대한 정치적 오해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또한 소모적인 정쟁을 유발할 게 틀림없다. 한나라당은 벌써부터 김 대통령이 총리서리 임명을 고집하는 것은 장상 총리 임명동의안 부결 책임을 정치권에 전가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김 대통령은 무엇보다 국정공백을 막기 위해서라도 당장 총리직무대행을 임명해야 한다. 그리고 정치권도 법체계와 정치현실의 차이로 인한 혼선을 해소하기 위해 입법적 해결을 모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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