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사상자 구조체계 문제점 노출

  • 입력 2002년 7월 3일 18시 45분


6·29 서해교전 사태 당시 북한 경비정의 기습 공격을 받아 우리 고속정에 탑승한 장병 24명이 숨지거나 부상했으나 공군 구조 헬기가 출동한 것은 피해가 발생한 지 40분∼1시간20분이 지난 뒤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군 당국은 피격된 고속정의 통신시설이 파괴된 데다 교전이 진행 중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으나 전사상자 응급구조 체계의 문제점이 노출됐다는 지적이 많다.

▽구조 상황〓교전 당시 우리 고속정이 북한 경비정의 85㎜ 함포사격으로 피격된 시간은 오전 10시25분이었고 공군이 아군의 피습사실을 통보받은 시간은 오전 10시41분이었다.

이어 공군 HH60, hh47 등 2대의 헬기가 각각 오전 11시6분과 11시46분에 출동했다. 이때는 이미 북한 경비정이 북방한계선(NLL) 이북으로 퇴각해 교전이 종료(오전 10시56분)된 뒤였다.

두 헬기가 현장에 도착한 것은 각각 낮 12시15분과 12시40분. 그리고 두 헬기가 우리 함정들이 후송해 온 24명의 전사상자를 태우고 성남 국군수도병원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2시1분이었다.

군 당국은 “공군 헬기들은 지대공 미사일과 대공포 등 북한 대공망과 적 레이더의 위협을 피하기 위해 최저 고도를 유지하며 교전 지역에 투입됐다”고 말했다.

▽지연 논란〓첫 번째 헬기가 투입된 시간은 우리 고속정이 기습공격을 받은 지 40분이 지나서였고 뒤이어 두 번째 헬기의 구조 작업은 1시간20분이 지나서야 시작됐다.

피격 고속정의 부상자들은 피투성이가 된 몸으로 조타실 밖으로 나와 교전이 끝날 때까지 함정에 설치된 기관총과 포로 적선을 향해 필사적인 대응사격을 했다. 교전이 종료된 뒤에야 다른 함정으로 전사상자들이 옮겨졌다.

남북 함정 간의 교전이 진행되는 동안 헬기는 지상에서 출동 태세만 갖추고 있었다. 군의 구조작업이 지연 논란이 일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에 대해 군 당국은 “통신 두절과 교전 진행상황 및 구조헬기의 각종 장비 적재 등을 감안하면 구조작전이 지연된 것은 아니다”고 해명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현장의 초기 피해 보고가 늦어졌고 그 내용도 부정확했던 것이 전체적인 구조 작전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지적이 많다.

실제로 교전이 끝날 때쯤인 오전 10시50분경 “몇 명이 다친 것 같다”는 최초 보고에 따라 군 당국은 첫 번째 헬기를 출동시켰고 이후 대량피해가 확인되자 40분 뒤 두 번째 헬기를 출동시켰다.

윤상호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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