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9서해교전]긴박했던 격전 25분

  • 입력 2002년 6월 29일 19시 09분


‘꽈광.’29일 오전 10시25분경 서해안 연평도 인근 북방한계선(NLL) 남쪽 3마일 해상까지 침범한 북한경비정을 감시 중이던 우리 측 해군 고속경비정의 조타실이 바다를 뒤흔드는 굉음과 함께 화염에 휩싸였다.

NLL을 침범한 북한경비정은 북측으로 퇴거하라는 경고방송을 하던 우리 고속정을 향해 돌연 선체를 돌려 85㎜ 함포를 기습 발사한 것.

85㎜ 함포는 북한경비정이 장착한 무기 중 가장 강력하고 사거리가 긴 위협적인 무기. 99년 6월 이후 3년 만에 남북간 ‘제2의 서해교전’이 발발하는 순간이었다. 적의 불시 공격으로 우리 고속정은 제대로 대응 사격도 하지 못한 채 24명의 사상자와 실종자를 내고 검은 연기에 휩싸인 채 그 자리에 서버렸다.

고속정 승무원들은 서둘러 갑판 위로 뛰어 올라 대응태세를 갖췄으나 북한경비정은 이들에 대해 기관총을 난사해 제대로 손도 쓰기 힘든 상황에 직면했다. 본격적인 꽃게잡이 조업철을 맞아 최근 북한경비정과 어선의 NLL 침범이 잦았지만 실제 교전으로 이어지리라고는 승무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이날 교전이 있기 전까지 서해 NLL 인근 해역은 전날처럼 30여척의 꽃게잡이 어선이 북측 해상에서 조업 중인 가운데 북한경비정 2, 3척이 어업 지도 단속을 벌이는 등 평온한 상태였다. 당시 해상은 파고 0.5m, 시정 5마일로 조업하기에는 최적의 상황이었다.

평온이 깨진 것은 오전 9시54분경 북한 SO1급 1척이 연평도 서방 7마일 해상에서 NLL 남측 해역 1.8마일을 침범하면서부터. 이에 인천 제2함대 상황실과 합동참모본부 지휘통제실, 해군 작전사령부 등의 비상대기조는 북측 경비정의 이동 상황을 주시하면서 비상태세에 돌입했다.

우리 해군 함정은 먼저 NLL을 넘은 북한경비정 1척에 대해 ‘퇴각’ 경고방송을 여러 차례 실시한 뒤 대응 기동에 나섰다. 10시01분경 또 다른 북한경비정 1척이 연평도 서방 14마일 해상 NLL 남측 해역을 3마일가량 넘자 우리 고속정 1개 편대(2척)가 위협 기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두 번째 북한경비정은 우리측 대응기동을 무시한 채 계속 남쪽으로 항진했고, 우리 고속정 4척이 이 경비정에 450여m 가까이 근접해 경고방송을 했다. 양측 함정은 450여m 사이를 두고 거친 파도를 일으키며 한동안 고속 기동전을 펼쳤다.

이때 북한경비정은 장착무기 중 가장 위력적인 85㎜ 함포로 ‘선전 포고’도 없이 기습 공격을 해왔다. 우리 고속정 1척이 순식간에 피격되자 함께 출동한 다른 고속정이 즉각 대응조치를 취하는 동시에 인근 해상에서 대기 중이던 고속정 2척이 증강 배치됐다.

우리 고속정은 20㎜ 벌컨포와 30㎜, 40㎜ 함포로 북한경비정에 대응 사격을 실시했다. 이 과정에서 피격된 해군고속정 정장 윤영하(해사 50기) 대위가 현장에서 사망했다. 선제공격을 한 북한경비정은 인근 해상에 와있던 또 다른 경비정 1척과 합류, 북쪽으로 도주하며 우리 측에 계속해서 기관포 등으로 사격을 가했다.

10분 뒤인 오전 10시35분, 우리 고속정 2척과 함께 해군초계함(PCC) 2척이 추가로 현장에 급파돼 도주하는 북한경비정에 수백발의 벌컨포와 함포 사격을 퍼부었다. 초계함의 주포인 76㎜ 함포도 연이어 불을 뿜었다. 양측이 주고받는 함포소리가 인근 해상을 뒤흔들었다.

한편 당시 충남 서산 상공에서 초계비행 중이던 공군 KF16 전투기 편대도 상황을 통보받고 교전 현장 인근 덕적도 상공으로 이동했다.

오전 10시43분 우리 함정들로부터 수백발의 함포와 기관포 세례를 받은 북한경비정 1척에서 화염이 치솟았다. 시커먼 연기에 휩싸인 북한경비정은 선체가 심하게 기울어졌지만 침몰되지는 않았다. 오전 10시50분 화력에 열세를 느낀 북한경비정들은 북쪽으로 속도를 높여 NLL 북쪽을 통과해 완전히 퇴각했다.

뒤이어 우리 군 함정이 적에게 공격당한 고속정의 예인 작업에 들어갔으나 대파된 고속정은 서서히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군 긴급 구조헬기는 사망자와 부상자를 싣고 국군 수도통합병원으로 향했다.

윤상호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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