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기념국제학술회의]"축구로 한일우호 새지평 열자"

  • 입력 2002년 3월 22일 18시 24분


《한국국제정치학회(회장 우철구·禹澈九)와 일본국제정치학회(회장 이노구치 다카시·猪口孝), 동아일보 부설 21세기평화재단·평화연구소(소장 남중구·南仲九)는 22일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스포츠 교류와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협력’이란 주제로 한일 월드컵 공동개최를 기념하는 국제학술회의를 열었다. 동아일보 후원, 현대중공업 협찬. 정몽준(鄭夢準) 월드컵조직위원장은 기조발제에서 “국가이익의 충돌로 공동의 목표를 향해 단결하지 못했던 동북아도 이제 ‘축구’라는 공동언어를 공유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학준(金學俊) 동아일보사 사장은 “‘핑퐁 외교’에 이은 미-중 관계 정상화, 88서울 올림픽에 이은 한-러시아 수교 등 스포츠는 국가간의 관계를 개선하는 데 기여해왔다”고 말했다. 한일 양국의 전문가 24명이 참여해 3개 주제로 나뉘어 진행된 학술회의에선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 이후 동북아 정세에 대한 열띤 토론이 있었다. 21세기평화재단·평화연구소(설립자 김병관·金炳琯 전 동아일보 명예회장)는 각종 학술 문화사업과 민간교류 등을 통해 한반도의 화합과 번영을 촉진하고 세계평화와 인류의 삶의 질 향상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2000년 4월 창립된 공익재단이다.》

▼스포츠 교류와 한일 협력관계 모색▼

▽스포츠 세계화와 국제정치경제(이대희·李大熙 부경대 교수)〓스포츠는 사회·정치체제와 상관없이 모든 나라에 동일한 규칙이 적용된다는 점에서 사상과 체제, 인종을 초월하는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 때문에 다른 어떤 분야보다 세계화 수준이 높다. 이는 국제스포츠기구 회원수에서도 확인된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회원국과 국제축구연맹(FIFA) 회원국이 각각 199개국과 204개국인 반면 유엔 회원국은 189개에 불과하다.

오늘날에는 스포츠를 통해 미국화가 이뤄진다. 스포츠를 지배하는 언론 대기업이 대부분 미국계 회사들이고 미국이 가장 중요한 시장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송출하는 스포츠 영상과 함께 미국식 생활 양식과 소비 양식이 그대로 세계에 전파되고 있다.

▽한일 스포츠 교류와 양국 관계(히라노 겐이치로·平野健一郞 와세다대 교수)〓올림픽은 사회 통합을 더욱 강화하는 효과를 발휘한다. 이 때문에 정치가 스포츠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던 게 사실이다. 특히 동서냉전 시대의 올림픽은 냉전의 국제정치를 그대로 반영한 싸움터와 같았다. 올림픽이 정치적 색채를 띠는 까닭은 선수들이 경기 성적을 겨루기 때문이 아니라 자국 선수를 응원하기 위해 국기를 흔들고, 국호를 연호하는 관객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습은 TV 등 대중매체를 통해 국경 밖까지 전달된다. 일본의 축구팬들은 J리그에서 맹활약중인 한국 선수를 통해 한국에 친근감을 갖고 있다. 축구 등을 통한 한일간 스포츠 교류는 역사 인식을 포함해 상호이해를 깊게 할 것으로 기대된다.

▽동북아 스포츠 교류와 협력을 위한 한일의 역할(이근·李根 서울대 교수)〓2차대전 이후 동북아시아 국가들은 미국과 구 소련 사이에서 주권을 보유한 정상 국가의 지위를 갖지 못했다. 이처럼 불안전한 주권의 정체성이 동북아에서의 지역주의 형성을 어렵게 하고 있다. 하지만 스포츠 교류는 미국과 중국간의 탁구 교류처럼 상호 존재를 인정하지 않던 국가들이 서로를 인정하도록 실마리를 푸는 기능을 한다. 월드컵 한일 공동개최를 계기로 양국이 스포츠 교류의 제도화를 선도한다면 동북아지역에서의 민족 감정 악화 요인이 줄어들 것이다. 스포츠 교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국제정치적으로 훨씬 유용한 수단이다.

제1회의에서는 이케이 마사루(池井優) 아오야마학원대 교수, 최화경(崔和敬) 동아일보 논설위원, 오시바 료(大芝亮) 히토쓰바시대 교수 등이 토론자로 나섰다.

▼동북아 질서변화와 평화의 모색▼

▽미국의 동북아 정책 변화와 전망(윤덕민·尹德民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미국은 동아시아에서 중국의 급부상과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 개발이라는 두 가지 중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특히 북한의 WMD 문제는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후 2단계 반테러전 수행에서 미국이 해결해야 할 최우선 과제로 부각되고 있다. 북한은 현재 6·25전쟁 직후보다 어려운 최악의 상황에 처해 있으며 김정일 정권은 점차 체제변화 압력에 부닥치게 될 것이다. 스탈린식 통제경제에 입각한 현재의 주체(主體) 체제는 10년 이상 지속되기 어렵다고 본다. 미국이 북한을 ‘악의 축’으로 보는 이유는 북한이 WMD의 세계적 확산문제의 열쇠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북한을 달래거나 대화재개 자체를 위해 대가를 주지는 않는다는 원칙을 견지하고 있다.

▽중국의 세계화 대응전략과 동북아 국제질서(고쿠분 료세이·國分良成 게이오대 교수)〓경기 촉진을 위한 별다른 국내 성장 엔진을 갖고 있지 않은 중국이 의존할 것은 외자뿐이다. 중국은 경제성장이 정체하는 양상을 보이자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적극 추진했다. 이는 중국 경제가 외자의존형임을 보여준다. 중국은 98년 개정한 헌법에서 사유제를 인정하는 ‘기본경제제도’를 견지한다고 규정했다. 이후 공산당은 기업가의 입당을 인정해 계급정당으로서의 성격에서 이탈하기 시작했다. 민주주의제도가 결여된 중국의 시장 글로벌주의는 부의 편재를 초래해 한편으로 기득권층을 증가시키고 다른 한편으로는 약자를 대량으로 만들어냈다. 중국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본질적인 정치 개혁이며 이 경우 민주화 문제를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일본의 군사력 증강과 동북아 안정(김경민·金慶敏 한양대 교수)〓일본은 핵무기만 없을 뿐 이미 군사대국이다. 마음만 먹으면 단기간 내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는 핵 원료와 기술을 확보하고 있으며 위성을 통한 첩보 수집 능력과 로켓발사 능력도 갖추고 있다. 98년 일본 자위대의 이지스함은 북한 대포동 미사일의 발사 궤적을 낱낱이 추적했다. 동북아 지역에 안보협력체 결성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수없이 제기돼 왔으나 역사적으로 안보 협력의 경험이 부족한 동북아 지역 특유의 역학구조 때문에 안보협력체 결성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제2회의 토론자는 이종원(李鍾元) 릿쿄대 교수, 김재철(金材澈) 가톨릭대 교수, 다나카 다카히코(田中孝彦) 히토쓰바시대 교수 등이었다.

▼한반도 통일조건과 평화를 위한 과제▼

▽북한의 미국 및 일본과의 관계 변화와 전망(서동만·徐東晩 상지대 교수)〓현재 북한과 미국, 일본의 관계는 매우 위험스러운 상태다. 탈냉전 이후 미국은 WMD 문제 해결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우고 있는 만큼 WMD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미국은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꾀하지 않을 것이다. 부시 정부 출범 이후 미국의 대북 발언은 한국 정부와의 사전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행해졌다. 이는 북-미 관계는 물론 남북 관계 개선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재래식 군사위협의 감소는 상당한 정치적 신뢰가 형성돼야 실현될 수 있다. 따라서 WMD 문제가 해결되고 북-미 관계가 정상화된 뒤 이 문제의 해결을 꾀하는 것이 보다 손쉬운 접근방식일 것이다.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독일 통일의 교훈(이와마 요코·岩間陽子 정책연구대학원대학 교수)〓독일에서는 80년대 말 독일 재통일 가능성을 의문시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그러나 국경이 열리자 통일을 향한 흐름을 막을 수 없었다. 현재의 남북한간 경제력 격차를 생각하면 일시에 국경을 개방할 경우 상당한 혼란이 빚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를 피하려면 15∼20년간의 긴장완화 과정을 거친 독일처럼 단계를 밟아야 한다. 오히려 한반도 통일은 독일보다 더 긴 긴장완화 과정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북한 사회와 경제는 외압에 노출됐을 때 붕괴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북한 주민들의 남쪽을 향한 대이동이 예상된다. 이를 방지하려면 북한에 머무르더라도 생활이 좋아지고 밝은 미래가 있다고 느끼게끔 해야 한다.

▽일본의 대북 외교 전략의 재구축(오코노기 마사오·小此木政夫 게이오대 교수)〓북-일관계는 현재 고착상태에 빠져 있다. 특히 최근 부시 미국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은 북-일관계 개선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북-일관계 정상화는 북-미관계 같은 국제적 요인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기 때문에 일본의 대북 외교정책은 국제적인 협조의 틀을 함께 고려하며 전개돼야 한다. 일본의 대북관계 진전을 위해서는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대북 쌀 지원을 계속 하고 각종 대북 제재조치를 해제하는 등 유연한 대응방식을 구사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한미일 3국 공조를 중심으로 한 대북문제 해결에 무게 중심을 둬야 할 것이다.

제3회의에서는 기미야 다다시(木宮正史) 도쿄대 교수, 김학성(金學成)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김기수(金起秀)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등이 토론에 나섰다.

정리〓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 성동기기자 espr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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