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정부4년 3]언론 '개혁' 아닌 탄압

  • 입력 2002년 2월 24일 18시 09분


“민주주의 파괴” 규탄
“민주주의 파괴” 규탄
《지난해 언론사 세무조사가 진행될 당시 이를 지지했던 최문순(崔文洵) 전 언론노조연맹 위원장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현 정부에 엄청난 실망감과 혹독한 배신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현 정부의 언론개혁이 실패한 이유로 △정부가 이를 주도할 만한 도덕적 기반과 자격을 갖추지 못했고 △자율적으로 이뤄져야 할 일에 국가권력이 동원됐으며 △정치적 목적이 드러난 점 등을 들었다. 그가 배신감을 토로한 것은 ‘도덕적 자격 결여’와 ‘정치적 목적’ 때문인 것 같다. 이제 언론사 세무조사가 정부 주장처럼 순수하게 조세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보는 사람은 언론개혁에 동조했던 시민단체 관계자 중에도 그리 많지 않다.》

언론사 세무조사 과정을 돌이켜보면 정략적 목적에 의한 비판언론 통제 의도를 어렵지 않게 간파할 수 있다. 국제언론인협회(IPI)가 21일 발표한 ‘2001년 세계 언론자유 보고서’도 “김대중(金大中) 정부가 정책 실패에 따른 인기하락을 언론 탓으로 돌렸다”고 지적했다.

언론개혁에 관한 한, 취임 이후 줄곧 자율개혁을 강조했던 김 대통령의 언급이 두드러지게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99년 6월 ‘옷 로비’ 사건 때. 거센 비판 여론에 직면한 김 대통령은 “잘못이 없는데 ‘마녀사냥’식으로 몰아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언론보도에 대한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그해 11월 김 대통령은 “일부 언론이 개혁의 발목을 잡고 있다”며 부정적인 언론관을 그대로 표출하기도 했다. 이어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과 그해 노벨평화상 수상을 전후해 김 대통령의 부정적인 언론관은 더욱 불행한 방향으로 치달았다.

김 대통령은 마침내 “일부 언론이 국민 위화감을 조장하고 있다”(2000년 11월)고까지 말했다. 언론 통제 유혹에 빠져들고 있는 김 대통령의 속내를 드러낸 것으로, 언론사 세무조사에 대한 ‘사전 경고’의 성격이 짙었다.

남북관계의 획기적 개선에 대한 김 대통령의 조급한 기대와 환상이 김 대통령을 유혹에 빠져들게 한 주된 요인의 하나로 꼽힌다. 정상회담 직후 민주당이 국가보안법 개정을 서두르면서, 법 개정 반대론자를 ‘반(反)통일세력’으로 몰아붙인 것부터가 불길한 징조였다.

김 대통령도 ‘대북(對北) 퍼주기’나 ‘무분별한 대북 지원’을 비판하는 언론보도에 몹시 민감하게 반응했다. 북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을 위한 정지(整地)작업의 일환으로 언론사 세무조사가 단행됐을 것이라는 지적도 이 같은 정황 때문이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김 대통령은 김 위원장의 답방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태도를 보였고, 여권 핵심 관계자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김 위원장 답방을 전후한 언론의 보도태도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 게 사실이다. 그리고 그런 가운데 언론에 재갈을 물리기 위한 세무조사가 단행된 것이다.

집요할 정도의 김 위원장 답방 추진과 비판여론 잠재우기는 결국 ‘통일헌법’ 제정을 명분으로 내세워 정권을 재창출하려는 ‘재집권 시나리오’에서 비롯됐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2000년 10월 여야 영수회담에서 김 대통령이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총재에게 “북한이 사실상 연합제에 접근하고 있다. 어쩌면 국민투표를 거쳐야 할 상황이 생길 수 있다”고 말한 것도 그러한 관측을 뒷받침하고 있다.

언론사 세무조사 결과가 발표된 직후인 지난해 7월 민주당 외곽의 학술연구모임인 새시대전략연구소가 심포지엄을 열어 통일헌법 제정 문제를 공론한 데다 통일헌법과 관련한 여권의 내부문건이 공개되면서 의혹은 더욱 증폭됐다.

목적이 정당하지 못하니 수단이나 방법도 정상적일 수 없어, 예기치 않은 혼란과 부작용을 낳았다. 단일업종으로는 최대 인원과 최장기간을 기록한 언론사 세무조사부터가 조세행정의 상궤를 벗어난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심각한 부작용은 사회적 반목과 갈등의 심화였다. 일부 시민단체들이 정부의 언론개혁 드라이브에 동조하는 여론 조성에 나서면서 ‘홍위병’ 논쟁이 벌어져 우리 사회가‘적과 동지’로 나뉘는 양상을 보였고, 그러한 분열과 대립은 언론계 내부까지 확산됐다.

일부 방송사는 특정 신문사를 부도덕하고 파렴치한 집단으로 몰아붙였고, 일부 신문사는특정 신문사를 향해 ‘조폭’이라는 막말도 서슴지 않았다. 자연 우리 사회의 정상적인 비판기능은 현저히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반면 현 정부는 정부 소유 언론사의 소유구조를 개선하고, 과거 언론통제의 창구 역할을 해온 공보처를 폐지하겠다던 약속은 지키지 않았다. 현 정부 출범과 함께 폐지했던 공보처는 99년 5월 국정홍보처로 부활했다. 정부는 이와 함께 규제개혁 차원에서 폐지됐던 신문고시(告示)도 부활시켜 언론시장에 적극 개입하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한국외국어대 김우룡(金寓龍·신문방송학) 교수는 “언론의 자유는 모든 자유의 기초이므로, 어떤 이유로도 훼손돼서는 안 된다”며 “언론이 정부에 통제되거나 장악되면 모든 자유가 유린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김대통령 언론관련 발언록
일 시발언 내용
1998년4월 7일언론의 역할이 없었다면 이 나라 민주주의가 이만큼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비판 없는 찬양보다 우정 있는 비판이 중요하다
(신문의 날 기념행사)
1998년 12월10일언론은 국정 전반의 개혁에도 기여해야겠지만 자신의 개혁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국민일보 창간 리셉션)
1999년 11월12일국민 90%는 언론개혁을 말하고 있으나 정부가 언론을 억압하거나 탄압해서는 안된다. 언론이 스스로 개혁해야 한다
(국민회의 원외지구당위원장 청와대 초청오찬)
1999년 12월16일정치와 일부 언론이 개혁의 발목을 잡고 있다. 잘했다는 소리보다 비판의 소리가 더 심하다
(재야단체 회원 청와대 초청 오찬)
2000년 11월 3일 일부 언론이 지역감정과 국민 위화감을 조장하고 있다. 국민이 각성해 지역감정 선동 정치인과 언론인을 심판해야 한다
(부산·울산시 업무보고)
2001년1월11일언론도 공정 보도와 책임있는 비판을 해야 한다. 언론계 학계 시민단체 국회가 합심해서 언론개혁을 위한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연두기자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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