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정책 대 상호주의' 한-미 평행선

  • 입력 2002년 2월 17일 18시 56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16일 아시아 3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대북 햇볕정책과 미국의 엄격한 상호주의가 “병립할 수 있다”고 밝혔지만 한미 양국 간에 대북정책에 관한 인식 차가 적지 않음을 다시 확인시켜줬다.

▽햇볕정책은 이산가족상봉?〓부시 대통령은 “햇볕정책의 핵심은 가족들이 만나는 것”이라며 햇볕정책을 남북한 주민들의 교류에만 한정하는 인식을 내비쳤다. 이는 그동안 부시 행정부가 햇볕정책의 성과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여온 것과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부시 대통령은 20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햇볕정책에 대한 지지를 거듭 천명할 것으로 보이지만 그 근저에 깔린 회의론을 어떻게 불식시키느냐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설득력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정부 관계자는 “김 대통령은 대북 대결정책이 가져올 ‘안보 딜레마’ 등을 설명하며 이해와 설득을 시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일 정권과 북한 주민은 다르다?〓부시 대통령은 “북한에서 많은 사람들이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감옥에 갇혀 있으며 언론자유도 없다”며 북한의 인권문제를 거론했다. 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북한 주민들의 의지(will)를 대표한다고 믿지 않는다”며 불신감을 드러냈다.

그동안 미국은 ‘불량국가’인 북한의 경우 인권문제를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이는 남북관계가 개선되면 우리 정부가 직접 얘기하겠다는 요청을 받아들인 것이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의 언급으로 북한 인권문제가 이슈화할 가능성이 커졌다.

정부 관계자도 “부시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으로 대표되는 북한 체제의 도덕성 문제에 포커스를 맞추겠다는 의미로 보인다”며 “향후 정부의 대응책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의제별 역할분담은 끝?〓부시 대통령은 “북한은 재래식무기를 뒤로 물리고 군사적 긴장해소 방안에 대해 대화해야 한다”며 재래식무기를 북-미간 의제로 삼겠다는 점을 거듭 밝혔다. 재래식무기는 남북 간에 해결한다는 ‘역할분담론’에서 벗어나 대량살상무기(WMD)와 재래식무기를 포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정부는 지난해 한미 국방장관회담에서 재래식무기 위협 해소는 한미 양국이 공동 노력하되 한국이 ‘주도적 역할(leading role)’을 맡기로 정리했음을 들어 미국을 설득할 예정이다. WMD 문제도 북측에 직접 해결을 촉구하는 등 미국측과 보조를 맞추면서 조율해 나간다는 입장이다.

▽‘당근’은 성과를 바탕으로?〓부시 대통령이 언급한 대북 관계개선의 보상책은 우리 정부가 생각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한국은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이끌기 위한 보상책이 필요하다고 보는 반면 미국은 구체적인 성과(북한의 핵사찰 수용, WMD 포기 등)를 보아가며 식량지원 증가나 테러지원국 해제, 국제기구 차관지원 등을 고려한다는 것.

이는 전적으로 북한의 향후 태도에 달린 문제지만 정부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미국에 “북-미간 대화가 진전되면 꼭 당근이 있다”는 점을 거듭 밝혀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이철희기자 klimt@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