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추곡가 동결방침]선거 의식 ‘농민票心’ 달래기

  • 입력 2001년 12월 4일 18시 46분


정부가 매년 4∼5%씩 올려온 추곡수매가를 동결하기로 한 것은 ‘고육책’으로 보인다. 과잉생산으로 인한 쌀값폭락과 세계무역기구(WTO) 쌀 재협상에 나서야 하는 어려운 입장에서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표심(票心)’에 떠밀려 뒷걸음치는 농업정책의 현실을 또다시 보여줬다는 비판도 나온다.

▼관련기사▼

- 내년 추곡가 동결…수매량은 4.7% 줄여
- 추곡가 동결 농민-정치권 반응



4∼5% 인하가 필요하다는 양곡유통위의 건의를 묵살하고 ‘동결’을 택했지만 대부분 농민들은 만족해하지 않는다. 반면 농업문제 전문가들은 “국내 쌀값이 국제시세보다 6∼7배나 비싼 만큼 국내 쌀값을 낮추기 위해서는 당장 내년부터 수매가를 내려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정치논리에 떠밀린 수매가〓김동태(金東泰) 농림부장관은 “수매가 인하를 심각히 고려한 것이 사실”이라며 “다른 부처와 협의했지만 이미 내년 예산안이 다 짜여졌고 논농업직불제 단가 인상 외에 별다른 소득보전 대책이 없어 동결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농림부는 당초 ‘동결안’과 ‘2% 인하안’ 등 2가지 안을 갖고 있었지만 사상 최초의 인하가 유력한 것으로 점쳐졌다. 그러나 당정협의와 부처간 협의과정에서 동결안을 최종 선택한 배경에는 ‘정치적 입김’이 상당히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양곡유통위원인 민승규(閔勝奎)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당초 농림부는 양곡유통위에 대해 쌀 수매가를 낮춰야 한다는 분위기를 조성했다”면서 “이제 와서 동결안을 선택한 것은 ‘직무유기’이며 다음 정권에 책임을 떠넘기는 ‘정치적 결정’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2004년 쌀 재협상 대비할 수 있나〓수매가 결정을 앞두고 농업문제 전문가들은 국제시세의 6∼7배 수준인 국내 쌀값을 낮추기 위해서는 내년부터 수매가를 내려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2004년 쌀 재협상이 2년밖에 남지 않아 더 이상 시간이 없으며 소득감소분은 논농업직불제와 휴경보조금, 전작(轉作)보조금 등을 통해 보전해야 한다는 것.

이번 수매가 동결로 2004년 쌀협상에서 한국이 쌀 수입정책을 관세화로 전환해 400% 이상의 고율관세를 매기더라도 쌀수출국과의 가격차를 좁히기 어렵게 됐다.

서강대 사공용(司空鎔·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또다시 근시안적인 대책을 세워 몹시 실망스럽다”면서 “쌀 재협상 때까지 시장개방에 충분히 대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농가소득 어떻게 되나〓 농림부측은 “추곡수매가는 동결했지만 작년 ㏊당 비진흥지역 20만원, 농업진흥지역 25만원이던 논농업 직불제 단가를 국회 상임위가 40만∼50만원으로 올릴 전망이어서 80㎏ 한 가마당 수매가를 2.2% 올려주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국회 심의과정에서 수매가가 추가로 인상될 가능성도 아직은 남아 있다. 작년에도 양곡유통위는 0∼2% 인상을 정부에 건의했으나 정부는 3% 인상안을 국회에 제출했으며 국회는 4% 인상안을 확정했다. 국회가 1%만 수매율을 올려도 ‘수매가 동결(0.0%)+논농업직불제 인상효과(2.2%)+국회 인상률(1%)’로 물가상승률 전망치 3%대 수준까지 소득을 보전할 수 있다.

<박중현기자>sanjuck@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