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김정일답방, 미련 버려라

  • 입력 2001년 11월 14일 18시 37분


작년 6·15 남북정상회담 이후 처음으로 장관급회담이 결렬됐다. 6차 장관급회담은 남북한간에 불신만 쌓이게 해 오히려 하지 않는 것만도 못한 회담이 됐다. 구태여 긍정적으로 본다면 남측대표단이 북측의 무리한 요구를 끝까지 수용하지 않고 버텼다는 사실은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지금 와서 보면 남측대표들이 ‘뭔가 성과가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갖고 금강산까지 간 것이 잘못이었다. 북측은 애당초 이번 회담에 별다른 뜻이 없었다. 결국 남측대표들은 북측대표들과 6박7일간 입씨름만 하다 “남한이 6·15 공동선언의 근본 정신을 버리고 대결을 추구했다”는 식의 누명만 쓰고 빈손으로 돌아왔다.

북한에 대해 ‘퍼주기’와 눈치보기로 일관해 온 정부가 왜 이처럼 회담 결렬에 대한 책임까지 뒤집어쓰고 수모를 당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한마디로, 그렇게 한다고 해서 북한이 남북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오고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이 당장 서울에 오는 것은 아니다. 무조건 ‘햇볕’만 쬐면 된다는 식의 주장은 그동안 남북한 관계의 경험으로 보아 설득력이 없다.

특히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에 대한 미련은 이제 버려야 한다.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은 북측이 지켜야 할 약속이지 남측이 책임질 일은 아니다. 분위기를 조성하고 일이 성사되도록 준비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북측이 해야 할 일이다. 남측은 만약 북측이 그런 노력을 한다면 성실히 도와주면 그만이다.

북측은 의도적으로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밝히지 않고 있다. 대남(對南) 협상카드로 계속 이용하겠다는 속셈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여전히 김 위원장의 답방을 고대하며 마치 거기에 매달리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정부가 혹시라도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임기 후반 치적이나 어떤 정치적 파급효과를 기대하고 김 위원장의 답방에 집착하고 있다면 큰 잘못이다. 만일 제2차 정상회담을 금강산에서 하자며 김 대통령을 금강산까지 오라고 하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금강산을 남북한 회담 장소로 계속 고집하는 북한의 태도를 보면 충분히 그럴 가능성도 있다.

정부는 이제 김 위원장의 답방이나 또 다른 남북관계의 극적인 전환을 도모할 것이 아니라 그동안의 햇볕정책에 대한 냉정한 분석과 반성을 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다음에 어느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대북정책이 흔들리지 않도록 그 바탕을 차분히 ‘정리’해 주는 것이 정부가 지금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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