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당총재 사퇴후 첫숙제]초당적 신리더십 만들자

  • 입력 2001년 11월 11일 18시 32분


'반갑습니다' - 김대통령과 부시 전 미국대통령
'반갑습니다' - 김대통령과 부시 전 미국대통령
《한국정치가 새 실험대에 올라섰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여권의 ‘차기후보’ 도 선출되지 않은 상황에서 민주당 총재직을 사임함으로써 한국정치는 여야 모두가 경험해보지 못한 초유의 사태를 맞게 됐다. 한국정치는 종전 ‘수(數)의 논리’ 로 상징돼온 여야 대치 개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의 창출을 요구받게 됐다.

즉, 김 대통령에게 ‘제왕적 통치’ 의 틀에서 벗어나 설득 리더쉽을 만들어 내야 하는 과제가 주어졌다면, 거야(巨野)에게는 수적 압박의 유혹을 버리고 국정 동반자 역할로 질적 탈바꿈을 해야할 의무가 주어진 셈이다.

전문가들은 정계 일각의 의구심처럼 김 대통령이 ‘꼼수’ 를 동원, 정략적으로 상황에 대처하거나 야당이 숫적 우세를 이용해 오만한 행태 를 보일 경우 한국정치는 파탄의 수렁에 빠질 수 밖에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동아일보는 김 대통령의 여당 총재직 사임 이후 조성된 혼미정국을 진단하고 새 방향을 제언하는 시리즈를 마련했다.》

▼글 싣는 순서▼

- 上. DJ 당총재 사퇴후 첫숙제
- 中. 與-野-政 '열린 협력' 절실
- 下. 야당은 어떻게 변해야하나

‘집권당 총재가 아닌 대통령’으로서의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대통령비서실에 주어진 가장 시급한 과제는 바로 초당적 협력을 이끌어낼 새로운 리더십을 만들어 내는 일이다. 권력운용의 한계상 지금까지의 제왕적, 하향식 리더십은 청산이 불가피하게 됐기 때문이다. 김 대통령이 10일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청와대의 정치개입 자제’와 ‘여야 모두의 초당적 협력을 얻을 수 있는 당정협력 방안 강구’ 등 두가지 원칙을 제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새 리더십의 창출 가능할까〓청와대 비서실은 이미 대통령이 당적을 유지하면서 초당적 국정운영을 하고 있는 미국식 모델에 대한 검토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95년 11월 당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여소야대(與小野大)의 상황에서 정부제출 예산안이 다수 공화당의 반대에 부닥치는 바람에 연방정부가 일시 폐쇄되는 상황에 처하자,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까지 불참하면서 공화당 의원들을 일일이 접촉해 설득한 예가 있다.

이처럼 대통령이 직접 야당 의원들을 설득하는 것 자체가 과거 권위주의 시절이었다면 ‘사쿠라 논쟁’을 불러 일으켰겠지만 김 대통령이 총재직을 사퇴한 지금은 어려울 것도 없다는 것이 여권 주변 인사들의 얘기다.

민주당 국가경영전략연구소 부소장을 역임한 동국대 황태연(黃台淵) 교수는 “대통령이 지방선거 공천권도, 차기 대선후보 결정권도 포기한 상황인 만큼 야당도 이제 대통령을 초당적 존재로서 인정하고 만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이런 환경 조성을 위해서는 대통령 스스로가 먼저 정치 현안과 절연(絶緣)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또 ‘대통령은 무조건 여당편’으로 보는 우리 정치의 고정관념을 감안할 때 야당 의원들에 대한 개별설득에 앞서 영수회담 등 야당의 내부질서를 존중하는 접근방식이 선행돼야 한다는 주문도 많다.

▽‘꼼수’는 안 된다〓‘반쪽 여당’인 민주당과 정책연합을 하고 있는 민국당의 김윤환(金潤煥) 대표는 김 대통령의 총재직 사퇴와 관련해 “DJ는 당을 아홉 번 깨고 아홉 번 만든 사람이다. 이번 총재직 사퇴는 ‘반(反) 이회창(李會昌)’ 연대를 위한 헤쳐모여의 성격을 갖는 조치”라고 공개적으로 주장했다.

이런 시각은 한나라당 내에도 팽배해 있다. 손학규(孫鶴圭) 의원은 “총재직을 내놓고, 다시 새로운 정당을 창당하려 한다든지 하면 나라 망하는 길”이라고 경고했다.

여권 내부에서조차 김 대통령이 최소한 민주당에 대한 막후 영향력은 계속 행사하려 할 것이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 여권의 고위관계자는 “김 대통령이 자신의 직계라고 할 수 있는 한광옥(韓光玉) 대표를 총재권한대행에 지명하는 등 총재직 사퇴 이후 취한 일련의 조치를 보면 당에 대한 영향력을 완전히 포기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로 김 대통령과 민주당과의 관계 설정에 대해서는 청와대 관계자들부터 명확한 개념정립을 못한 채 헷갈리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혼선을 방치할 경우 자칫 초당적 국정운영이 구두선(口頭禪)에 그칠지 모른다는 우려가 청와대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다.

따라서 김 대통령이 여러 가지 의혹을 불식시키고 남은 임기동안 국정운영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아예 민주당 당적을 이탈하고 전면 개각을 단행,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되는 분위기다.

<윤승모기자>ysm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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