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 안보전문가 濠 코튼교수 특별기고]

  • 입력 2001년 11월 6일 18시 56분


필자인 제임스 코튼 교수(뉴사우스 웨일스대 호주방위아카데미 정치학과)는 호주의 대표적인 아태·동북아 안보문제 전문가로 9월 북한을 다녀왔다. 그의 특별기고를 요약, 소개한다.(편집자)

북한이 향후 어떤 정책을 추진하건 외면해선 안 되는 정치 경제 상황을 안고 있다. 이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어떤 진전도 이뤄낼 수 없다.

경제는 매년 100만∼200만t이 부족한 만성적인 식량난을 겪고 있고 공업생산은 에너지 부족과 사회주의국가의 몰락으로 인해 사실상 중단됐다. 북한은 96년 이후 국제원조기구들이 제공한 식량 비료 원유 의약품 생필품 등으로 연명해 왔다. 원조를 가장 많이 한 국가는 미국 한국 일본 등이었다.

북한 당국은 주민의 극심한 고통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상황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은 새로운 돌파구였다. 남북공동선언은 군사적 신뢰구축을 언급하지 않았으나 경제협력에서는 급속한 변화가 예상됐다.

경협은 91년 남북 기본합의 사항이기도 했지만 2000년은 당시 상황과 크게 달랐다. 남한 당국은 적극적인 대북 화해협력정책을 추진하고 있었고 북한은 지원이 절실했다.

경협이 일방적 원조가 되지 않도록 하려면 북한은 남한과 더불어 남한 시장을 위한 생산에 나설 필요가 있다. 대남 경협은 북한 내부상황을 개선하고 북한의 대외개방 의지에 대한 국제 신뢰를 제고해 외국투자를 끌어들일 수 있다.

그러나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 연기로 남북경협의 세부 실천조치들이 마련되지 못했고 이산가족 상봉과 장관급 회담이 연기되거나 취소됐다.

북측은 남북 교착상태가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의 책임이라고 주장했다. 나는 남북관계는 전적으로 남북 당사자간에 해결할 사안이며 미국의 정책이나 주장은 장애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북한 관리들은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한에서 고조됐던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면서 발생한 남한의 사회적 불안정과 내년 대통령선거에서 입게 될 정치적 타격의 심각성에 대해서는 인식하지 못하는 듯 했다.

대(對)테러 전쟁에 몰두하고 있는 미국이 대북 추가지원에 나설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럴 경우 남한의 실망은 더욱 커질 것이며 햇볕정책은 무산 위기에 처할 것이다. 그리고 남한의 어떤 차기정권도 이 정책을 밀고 나갈 가능성은 매우 낮다.

10년 전이라면 북한 지도자들은 국제질서의 재편과 한미 양국의 태도 변화를 기대하며 시간 벌기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시간이 많지 않다. 북한과 북한 주민이 처한 상황은 전에 없이 급박하다.

남북관계의 진전이 없는 한 국제기구들은 조만간 대북지원에 지칠 것이다. 실제 이런 조짐들이 나타나고 있다. 남한의 식량 추가지원은 북한이 군사력을 감축하지 않는 한 실질적이고 정치적인 한계를 안고 있다. 미국과 일본의 대북 불신도 커질 것이며 지원도 줄 것이다.

한마디로 북한은 남북정상회담 합의를 이행하지 않음으로써 체제 약화와 실패를 만회할 기회를 잃은 것이다.

<정리〓정미경기자>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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