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위원 일괄사퇴' 이후 세 진영 "일단 예봉은 피했지만"

  • 입력 2001년 11월 2일 18시 24분


▼동교동 "일단 예봉은 피했지만…"▼

1일 당무회의에서 있었던 동교동계 의원들의 대반격은 대통령 측근들에 대한 ‘인적 쇄신’쪽으로 흐르던 논의의 물꼬를 ‘최고위원 책임론’으로 돌려놓았다. 이에 따라책임론의 타깃도 권노갑(權魯甲) 전 최고위원과 박지원(朴智元) 대통령정책기획수석비서관에서 ‘지도부 공동의 책임’ 쪽으로 바뀌고 있다.

최고위원들이 2일 일괄사퇴를 결의한 것은 ‘동교동계 대반격’의 전리품이라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1일 당무위원회에서 최고위원 책임론을 거론한 사람들도 김영배(金令培) 안동선(安東善) 정균환(鄭均桓) 김옥두(金玉斗) 박광태(朴光泰) 의원 등 범동교동계 인사들이었다.

이들의 거친 공세에 쇄신파 최고위원들이 사의를 표명하거나 시사했고, 이것이 2일 최고위원 긴급간담회를 거쳐 일괄사퇴로 가닥을 잡은 셈이다.

동교동계 의원들은 “민심이반의 책임을 특정인사에게 뒤집어씌우는 것은 희생양 만들기”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함께 “이번에 물러설 경우 민심이 또 다른 희생양을 요구할 것이 뻔하다”는 위기의식도 가지고 있다.

최고위원들의 일괄사퇴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보다 많아졌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동교동계로서는 무엇보다도 김 대통령을 보호해야 한다는 절박감에서 최고위원 책임론을 공론화했을 것으로 보인다.

2일 최고위원 긴급간담회가 소집된 과정도 석연찮은 대목이 있다. 일부 최고위원들이 사퇴의사를 표명한 이상, 나머지 최고위원들도 버티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간담회를 소집한 한광옥(韓光玉) 대표는 이 같은 ‘계산된 의도’를 부인하고 있지만 쇄신파들은 적지않은 의구심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최고위원 일괄사퇴 결정이 반드시 동교동계나 당권파들에게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고 단언하긴 어렵다. 쇄신파들이 벌써부터 “최고위원들이 재·보선 패배의 책임을 진 만큼 이제는 민심이반에 대해 책임지는 사람이 나와야 한다”고 공세의 고삐를 다잡고 있기 때문이다. 동교동계가 쇄신파들에게 쏜 화살이 부메랑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윤영찬기자>yyc11@donga.com

▼청와대 "어차피 갈등은 불가피"▼

여권 핵심관계자는 2일 정풍파동을 둘러싼 민주당 내분에 대해 “대권 후보 간의 세 대결까지 겹쳐 있는 만큼 피하기 어려운 갈등이 불거진 것 뿐”이라고 심각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민주당 사태에 대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대응 기조를 짐작케 하는 말이다.

쇄신파들로부터 정계은퇴 요구를 받고 있는 권노갑(權魯甲) 전 민주당최고위원과 박지원(朴智元) 대통령정책기획수석에 대해 이상주(李相周) 대통령비서실장이 2일 “뚜렷한 잘못도 없는데 조치할 수는 없다. 그러면 영이 서지 않는다”고 적극 옹호하고 나선 것도 이런 기류와 무관치 않다.

청와대는 당 최고위원들의 일괄사퇴도 일단 만류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김 대통령이 어떤 방향으로 민주당 내분을 수습하든 문제는 상처투성이가 된 현재의 당 지도부가 어차피 과도체제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때문에 청와대도 내년 1월이냐 또는 3, 4월이냐의 시기문제만 남았을 뿐 ‘조기전당대회’가 불가피하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대표 선출과 후보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를 분리해 1월에 대표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를 우선 실시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지만 청와대 관계자들은 “준비기간을 감안할 때 1월 전당대회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지방선거를 새로운 간판으로 치러야 한다는 당내 요구를 감안할 때 3월을 전후해 후보와 대표를 동시에 선출하는 전당대회를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다음은 이상주 실장과의 문답 요지.-김 대통령의 수습 방안은…. “대통령은 당 공식기구에서 절차를 밟아 건의하면 수용할 마음의 자세가 돼 있다.”-권 전 최고위원과 박 수석 등을 비롯한 인적쇄신 주장에 대해.“누구건 잘못과 비리가 있으면 인사조치를 해야 한다. 그러나 권력을 전횡한 것이 구체적으로 있다면 모르지만 현재는 밝혀진 것이 없다. 무슨 요구가 있다고 지도자가 바로 사람을 내치면 누가 그 지도자를 따르겠느냐.”-개각은….“지금 예산국회가 열려 있다. 개각은 필요한 시기에 하시겠지만 지금은 시기가 아니다.”

<윤승모기자>ysmo@donga.com

▼쇄신파 "아무래도 뭔가 이상해"▼

10·25 재·보선 참패 이후 즉각적인 당정쇄신을 요구해 온 민주당 내 쇄신파 의원들은 2일 최고위원들의 일괄사퇴 결의에 대해 ‘왜 이 시점에서 나왔느냐’며 의구심을 나타냈다.

한 소장파 의원은 “1일 당무회의에서 ‘일부 최고위원이 쇄신연대를 배후조종하고 있다’는 식의 극단적인 비판이 쏟아졌고, 최고위원 책임론이 거론되자마자 일사천리로 이런 결정이 내려진 과정이 뭔가 자연스럽지 못하다”고 말했다.

정동영(鄭東泳) 최고위원이 당무회의에서 최고위원직 사의를 표명한 것은 당정쇄신에 대한 압박용이란 의미가 있었지만 이번 일괄사퇴는 다른 정치적 의도가 개입된 게 아니냐는 주장이었다.

‘국민정치연구회’의 이재정(李在禎) 의원도 “당5역과 최고위원 전원이 정치도의적 책임을 지고 사퇴하는 것은 재·보선 참패 직후에 이뤄졌어야 의미가 있다. 지금은 너무 늦었다”며 이번 일괄사의의 배경에 의문을 나타냈다.

쇄신파 의원들은 일단 3일 청와대 최고위원회의 결과를 지켜본다는 입장이다. 이 자리에서 일괄사퇴 결의가 당-정-청 쇄신의 출발점이라는 사실이 확인된다면 환영하지만 문제인사들에 대한 정계은퇴 압력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여론 환기용으로 드러난다면 단호히 대처하겠다는 것.

‘새벽 21’ 소속인 김성호(金成鎬) 의원은 “이번 사태를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최고위원들의 일괄사의 표명을 국면전환의 계기로 삼아 전당대회를 열어 당권을 장악하려는 정치적 꼼수를 부린다면 국민과 당원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만약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우리의 절박한 쇄신 요구를 묵살하거나 제대로 반영하지 않을 경우 쇄신 촉구 서명운동 등 강경대응이 잇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또 ‘여의도정담’을 이끌고 있는 조순형(趙舜衡) 의원은 “김 대통령이 최고위원들의 일괄사의 표명과 상관없이 당정쇄신을 하루 빨리 실천하는 정치적 결단을 내려야 한다”며 “총리 인선 등은 야당과도 협의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부형권기자>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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