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지자체 공무원 "국감 실력저지" 선언

  • 입력 2001년 9월 10일 18시 13분


서울시 등 전국의 지방자치단체 6급 이하 공무원들이 10일 시작된 국회의 지자체 국정감사를 ‘현행법상 허용되지 않는 지방 고유사무를 부당하게 감사하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실력 저지하겠다고 밝혔다.

또 교육인적자원부 행정자치부 기획예산처 등 일부 중앙부처 공무원직장협의회도 10일 “방대한 국정감사 자료 제출 요구로 행정부 업무가 마비되고 있다”며 “폐단이 계속되고 있는 방대한 국감 자료 제출 요구를 중단하라”고 요구해 수감기관들이 국감에 조직적으로 반발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2001 국감 바로가기▼

그러나 국회는 지자체와 일부 중앙부처의 반발을 수긍할 수 없다면서 국감을 강행키로 해 국회와 지자체 공무원 간의 충돌이 예상된다.

전국공무원직장협의회 발전연구회(전공연)는 이날 서울시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국회가 지자체에 요구한 자료 중 국가 위임사무 관련은 10%에 불과하고 현행법상 국정감사 대상이 아닌 지방 고유사무가 90%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6급 이하 공무원들로 구성된 전공연은 국회 해당 상임위가 지방 고유사무는 감사하지 않겠다고 밝히지 않을 경우 각 지자체의 직장협 소속 공무원들을 동원해 국감장을 봉쇄하도록 하는 등 행동지침을 이날 일선 시도 직장협에 보냈다.

11일에는 국회 행정자치위의 경남도, 전남도 국감이 예정돼 있다.

현행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에는 국가 위임사무를 제외한 지방 고유사무는 국감 대상이 아니며 지방자치법에는 국가 위임사무 중 국비(國費) 보조가 없을 경우 지방 고유사무로 본다고 돼 있다. 그러나 위임사무 구분은 총론일 뿐 개별 사무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이 없어 혼선을 빚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이대호(李大鎬) 전공연 대변인은 “지자체마다 매년 시도 의회 및 국회 등 5곳에서 중복 감사를 받느라 행정력 낭비와 업무 지장을 초래하고 있다”며 “자치단체장들은 공천권을 쥔 정치인들의 눈치를 살피느라 대처를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서울시공무원직장협의회는 “올해 국회 환경노동위가 서울시에 요청한 자료 중 6.3%, 행정자치위가 요청한 자료 중 9%가 국가 위임사무이고 나머지는 모두 지방 고유사무”라고 주장했다.

국회 운영위의 정호영(鄭浩永) 수석전문위원은 “국회의 지자체 국감은 총괄적인 국가 위임사무에 대한 합법적인 행위로 문제가 없다”면서 “일선 공무원들이 실력행사를 벌인다면 해당 상임위 감사팀에서 상황에 맞게 탄력적으로 대처할 필요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실련 윤순철 지방자치국장은 “지자체의 반발은 아직 지방 분권이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한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라며 “국감에 앞서 국회와 지자체간 국감 대상 기관 선정 및 자료요구에 대한 실무협의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연욱기자>jyw11@donga.com

▼정치권 "法위배" 반박▼

정치권은 지방자치단체의 국감 거부 움직임과 관련 “이는 관련법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라고 즉각 반박했다.

한나라당 이재오(李在五) 원내총무는 “국가예산을 단돈 1만원이라도 받는 기관은 국정감사를 받는 게 원칙이고 상식인데, 엄청난 액수의 정부 예산을 지원 받는 지자체가 국정감사를 거부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국감을 거부하는 지자체에 대해서는 내년 예산 심사 때 한푼도 지원할 수 없다”고 말했다.

현행 국정감사 및 조사법은 지자체 중 광역자치단체의 국가 위임사무를 국회의 국정감사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고, 지방행정기관이나 지자체 출자기관 등 감사원의 감사대상 기관도 국회 본회의 의결을 거쳐 국정감사를 실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는 것.

임중호(林中豪) 국회 의사과장은 “지자체에서는 지자체 고유사무는 국감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현실적으로는 지자체의 국가 위임사무와 고유사무는 서로 중첩돼 있는 경우가 많아 딱 부러지게 어떤 게 고유사무인지 구분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임 과장은 또 “지자체 행정의 대부분이 중앙정부에서 기획, 결정하는 것이 많고 중앙정부 예산의 54%를 지자체가 쓰고 있는 상황에서 지자체가 국감을 거부한다면 국감제도의 근본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김정훈기자>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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