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상규명위원회는 97년 9월 광주 북구 C아파트에서 경찰의 추적을 피해 달아나다 추락사한 것으로 발표됐던 5기 한총련 투쟁국장 김준배씨(당시 27세) 사건을 조사한 결과 경찰의 프락치 공작과 구타사실이 있었던 점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 사건과 관련, 진상규명위원회는 당시 수사검사를 조사하기 위해 ‘동행명령’을 내렸으나 검사는 이에 불응해 마찰을 빚고 있다. ▽발표내용〓이날 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중간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전남경찰청 형사기동대 소속 A씨는 김씨의 주변인물 중 대학후배인 B씨(당시 25세)와 선배 C씨(당시 30세)에게 김씨의 은신처 첩보를 입수하기 위해 식사비, 술값 등으로 500만∼1000만원 상당의 향응을 제공했다고 위원회에서 진술했다는 것이다.
B씨와 C씨도 자신들이 첩보를 제공하는 조건으로 1300만∼1500만원을 주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위원회에서 털어놓았다는 것.
결국 김씨는 B씨가 마련해 준 아파트에서 숨어 지내다가 B씨의 신고로 경찰에 검거되기 직전 13층 아파트 외벽 케이블선을 타고 내려가다 3, 4층 부근에서 뛰어내리거나 추락한 뒤 현장에 있던 경찰의 폭행에 의해 숨진 것으로 보인다고 위원회는 밝혔다.
진상규명위원회 김형태(金亨泰) 상임위원은 김씨가 추락과 폭행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는 근거로 △김씨가 타고 내려온 케이블선에 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감정결과 △아파트 벽면에 남아있던 김씨의 발자국에 대한 케이블회사 직원진술 △김씨의 옷에 묻었던 신발자국과 일치하는 상흔 △직접사인으로 알려진 우심방 파열이 구타에 의해서도 가능하다는 한국외상학회 등의 소견을 제시했다.
▽고발 등 조치〓위원회는 김씨를 구타한 당시 형사기동대원(현 파출소 근무·경장)에 대해 폭행혐의로 검찰에 고발할 방침이다. 이는 위원회에 진정된 85건의 의문사 사건 중 아직 공소시효가 끝나지 않은 사건 40여건 가운데 첫 고발 조치가 될 전망이다.
위원회는 또 사건 발생 하루만에 사건을 종결 처리한 당시 정모 검사(현 지청장)의 수사지휘에 문제가 있었다고 보고 사실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동행명령장을 발부키로 했다.
위원회는 정 검사가 △사건발생 하루만에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부검 및 감정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추락사’로 내사 종결한 점 △사건의 직접 목격자 조사를 실시하지 않은 점 △유가족이 제기한 경찰 구타의혹을 조사하지 않은 점 등이 석연치 않다고 보고 있다.
정 검사는 그동안 위원회의 출석요구를 거부해왔는데 동행명령에 응하지 않더라도 의문사진상규명특별법상 위원회에 강제소환권이 없어 과태료만 부과된다.
▽정 검사 반박〓정 검사는 이날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출석요구에 대한 본인의 입장’이란 성명서를 통해 동행명령에 응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정 검사는 성명서에서 “김씨는 대법원이 이적단체로 인정한 한총련의 간부로 주민과 부검의의 진술 등을 종합해볼 때 수배 중 검거를 피하다 추락사한 것이 분명하다”며 “나는 그의 사망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피진정인으로 규정하여 출석요구를 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우며 검찰업무의 본질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반박했다.
또 정 검사는 “이 사건은 극히 공정하고 투명하게 처리되었고 위원회의 의문점에 대해서도 전화와 서면으로 충분히 설명해 최대한 협조했다”며 “그럼에도 검사소환과 동행명령을 강행하고자 하는 것은 의문사 진상규명이라는 근본 목적과는 다른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민혁기자>mh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