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문사관련 폭행경찰 고발 방침"

  • 입력 2001년 9월 3일 18시 31분


경찰이 문민정부 후반기인 97년까지도 수배학생 추적과정에서 그들의 선후배들을 ‘학원 프락치’로 이용해 왔던 것으로 드러났다고 대통령 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양승규·梁承圭)가 3일 발표했다.

진상규명위원회는 97년 9월 광주 북구 C아파트에서 경찰의 추적을 피해 달아나다 추락사한 것으로 발표됐던 5기 한총련 투쟁국장 김준배씨(당시 27세) 사건을 조사한 결과 경찰의 프락치 공작과 구타사실이 있었던 점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 사건과 관련, 진상규명위원회는 당시 수사검사를 조사하기 위해 ‘동행명령’을 내렸으나 검사는 이에 불응해 마찰을 빚고 있다. ▽발표내용〓이날 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중간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전남경찰청 형사기동대 소속 A씨는 김씨의 주변인물 중 대학후배인 B씨(당시 25세)와 선배 C씨(당시 30세)에게 김씨의 은신처 첩보를 입수하기 위해 식사비, 술값 등으로 500만∼1000만원 상당의 향응을 제공했다고 위원회에서 진술했다는 것이다.

B씨와 C씨도 자신들이 첩보를 제공하는 조건으로 1300만∼1500만원을 주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위원회에서 털어놓았다는 것.

결국 김씨는 B씨가 마련해 준 아파트에서 숨어 지내다가 B씨의 신고로 경찰에 검거되기 직전 13층 아파트 외벽 케이블선을 타고 내려가다 3, 4층 부근에서 뛰어내리거나 추락한 뒤 현장에 있던 경찰의 폭행에 의해 숨진 것으로 보인다고 위원회는 밝혔다.

진상규명위원회 김형태(金亨泰) 상임위원은 김씨가 추락과 폭행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는 근거로 △김씨가 타고 내려온 케이블선에 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감정결과 △아파트 벽면에 남아있던 김씨의 발자국에 대한 케이블회사 직원진술 △김씨의 옷에 묻었던 신발자국과 일치하는 상흔 △직접사인으로 알려진 우심방 파열이 구타에 의해서도 가능하다는 한국외상학회 등의 소견을 제시했다.

▽고발 등 조치〓위원회는 김씨를 구타한 당시 형사기동대원(현 파출소 근무·경장)에 대해 폭행혐의로 검찰에 고발할 방침이다. 이는 위원회에 진정된 85건의 의문사 사건 중 아직 공소시효가 끝나지 않은 사건 40여건 가운데 첫 고발 조치가 될 전망이다.

위원회는 또 사건 발생 하루만에 사건을 종결 처리한 당시 정모 검사(현 지청장)의 수사지휘에 문제가 있었다고 보고 사실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동행명령장을 발부키로 했다.

위원회는 정 검사가 △사건발생 하루만에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부검 및 감정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추락사’로 내사 종결한 점 △사건의 직접 목격자 조사를 실시하지 않은 점 △유가족이 제기한 경찰 구타의혹을 조사하지 않은 점 등이 석연치 않다고 보고 있다.

정 검사는 그동안 위원회의 출석요구를 거부해왔는데 동행명령에 응하지 않더라도 의문사진상규명특별법상 위원회에 강제소환권이 없어 과태료만 부과된다.

▽정 검사 반박〓정 검사는 이날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출석요구에 대한 본인의 입장’이란 성명서를 통해 동행명령에 응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정 검사는 성명서에서 “김씨는 대법원이 이적단체로 인정한 한총련의 간부로 주민과 부검의의 진술 등을 종합해볼 때 수배 중 검거를 피하다 추락사한 것이 분명하다”며 “나는 그의 사망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피진정인으로 규정하여 출석요구를 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우며 검찰업무의 본질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반박했다.

또 정 검사는 “이 사건은 극히 공정하고 투명하게 처리되었고 위원회의 의문점에 대해서도 전화와 서면으로 충분히 설명해 최대한 협조했다”며 “그럼에도 검사소환과 동행명령을 강행하고자 하는 것은 의문사 진상규명이라는 근본 목적과는 다른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민혁기자>mh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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