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통일대축전]정부 졸속-무책임…'빗나간 축전'

  • 입력 2001년 8월 20일 19시 19분


《남북관계의 교착상태를 해결하고 민간 교류의 폭을 넓히기 위해 추진된 평양 ‘8·15 민족통일대축전’이 깊은 상처만 남기고 끝났다. 대규모 민간 교류가 처음 이뤄진다는 점에서 일부 시행착오는 예상됐었지만 정부의 졸속 방북 승인, 참가 단체들 내부의 갈등과 돌출 행동으로 남북대화 재개만 더 어렵게 만들었다는 지적이 많다.》

▽정부의 책임〓정부는 대표단의 방북을 불허하다가 행사일(15일) 하루 전에 급작스럽게 방북을 승인했다.

이 과정에서 관련 부처간에 정상적인 논의 절차를 거쳤는지는 앞으로 규명되어야 할 일이지만 이로 인해 대표단에 대한 충분한 방북교육이 이뤄지지 못했다. 이로 인해 대표단의 활동과 움직임이 효과적으로 통제되지 못했다.

정부는 방북 승인을 하면서 평양에서의 잠깐 동안의 ‘소란’이 방북을 불허했을 때 야기될 비용보다 ‘싸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방북을 불허할 경우 △북한의 대남(對南) 비난을 통한 남북관계의 악화 △국내 통일단체들의 대정부 비난 △국내에서 진행될 8·15 통일대축전이 불법 시위로 바뀔 우려 △재야인사들의 밀입북 강행 등의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던 것.

더욱이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답방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는 정부로서는 남북관계 정체에 대한 책임을 모두 떠안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까지 있었다는 후문이다.

문제는 이번 사안의 파문이 의외로 크다는 것. 150여명에 이르는 인사들이 개막식에 참석하고 만경대의 방명록에 서명한 것은 정부로서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

특히 정부가 개폐회식 불참 각서에 대해 대표단에게 충분히 주지시키지 못함으로써 대표단의 일부 인사들이 제각각 행동하도록 만들었던 데 대해서는 책임을 면키 어렵다는 지적들이다.

▽남북관계에 미칠 영향〓이번 파문은 남북관계에도 일단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당장 정부가 대표단의 일부 인사들을 사법처리할 경우 북측은 이를 문제삼고 나올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남북관계는 더 주춤거릴 수 있다.

북측은 벌써 대표단에 대한 남측 정부의 처리 결과를 주시하겠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축전 북측 준비위원회 대변인이 19일 한나라당을 겨냥해 담화를 내고 “의도적으로 여론을 북남 대결에로 몰아가고 있다”고 한 것은 그 신호다.

게다가 법적인 책임을 묻는 절차가 진행되는 과정에서는 북측은 물론 우리 사회내부의 진보와 보수세력간 갈등도 깊어질 전망이다. 이미 통일연대측이 남측 추진본부의 대국민 사과 성명 에 대해 ‘일방적’이라며 유감을 표명했다.

그러나 이번 행사를 계기로 남북 민간교류가 새로운 틀을 잡아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긍정적인 시각도 없지 않다. 지나치게 돌출행동을 하던 개인이나 단체의 경우 여론과 국민감정을 고려해 보다 신중한 대북 접근을 할 것이란 기대에서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어차피 이번 일은 남북교류의 진전 단계에 비춰볼 때 한번은 겪어야 할 일이었다”며 “이번 일을 향후 민간교류의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식기자>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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