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어디로 가야하나]"공개적 합의바탕 통일문제 논의"

  • 입력 2001년 8월 12일 18시 27분


□남북문제의 본질을 어떻게 진단할 것인가

▽권오기 전 통일부총리〓광복 직후 남북한에서 각각 단독정부가 수립됐는데 그 기념식장에 ‘내일부터 통일한다’는 플래카드가 내걸렸다고 한다. 분단정부를 세우면서 통일한다고 한 것이다. 이런 모순된 상황이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 북한이 적(敵)이면서 동포이기도 한 본질적 문제와 연계돼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남북관계 해법은 물론 대북정책 수립에 어려움이 있다. 평화통일이란 문제가 그렇다. 평화는 현상을 유지하는 것이고 통일은 현상을 바꿔놓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평화와 통일을 동시에 얘기하고 있다. 모두가 통일을 얘기하지만 구체적인 방향이나 상(象)에 대한 일종의 합의가 없기 때문에 통일문제에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이호재 교수〓분단정부를 세우는 사람들이 통일을 내세웠다는 모순은 좋은 지적이다. 그런데 냉전이 시작되던 당시의 통일은 대개 북진(北進)통일이었다. 지금 냉전이 해체되는 시점에서의 통일은 기능주의에 입각한 것이든, 정치협상을 통한 것이든 일종의 통합과 협상 과정을 통한 것이다. 통일을 하나의 이상형으로 설정하면 그것은 북진통일이나 남진통일의 상이 되기 쉬울 것이다. 통합의 입장에서 보면 긴 시간에서 가능한 협력을 하고 문제 해결을 해나가는 과정이다. 물론 바람직한 이상형이 있으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여러 복합적인 형태의 통일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남북이라는 변수, 남북이외의 변수, 주변 관계라는 여러 변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글 싣는 순서▼
- 1. '국론분열-갈등' 치유의 길
- 2. 정치부터 바뀌어야 한다
- 3. 경제 어떻게 살릴 것인가
- 4. 교육에서 희망을 찾아라
- 5. 남북문제 바른 해법은
- 6. 4강과의 외교관계 재정립을
- 7. 외국 전문가들의 충고

□남북문제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권 전 부총리〓중국과 대만은 고위급회담을 한번도 하지 않았지만 사람과 물자의 내왕은 상당한 수준에 와있다. 우리는 고위급회담을 몇 번씩 했는데도 아직 정체된 상태이다. 우리가 통일이나 남북대화 등 어떤 사안에 접근할 때 스스로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다. 북한을 떠올릴 때 북한지역을 말하는 것인지, 체제를 말하는 것인지 등을 물어보는 것이다. 통일을 위해서라면 우리도 뭔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 교수〓남북대화는 잘 되기도 하고, 침체되기도 한다. 밝은 면이 있다가 어두운 면도 있듯이 낙관론과 비관론이 교차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해방기의 남북협상을 보면 좌파노선, 우파노선이 있었다. 당시엔 제3의 노선인 중도노선이 국내외적 냉전상황으로 인해 기회를 갖지 못하고 몰락했다. 이제 냉전체제가 무너진 만큼 어쩌면 제3의 노선만이 남북관계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다. 현재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개인의 정책으로 보기보다 역사적 관점에서 본다면 민족적인 과업을 재시도해야 할 시점에 나온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권 전 부총리〓남북문제를 추진할 때 구체적인 방향이 설정돼야 한다. 통일문제를 다루는 민간단체들이 많아졌지만 어떤 방향에 대한 합의는 부족한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실력자들이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비밀접촉 등을 하면 남북관계에 뭔가 되는 것처럼 혼란을 부추기게 된다. 물론 그런 것이 밑거름이 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다 나쁘다고 하긴 어렵지만 이젠 공개적인 합의를 바탕으로 시작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경의선 철도 연결문제도 충분한 준비가 있어야 한다.

▽이 교수〓남북대화는 정치나 군사분야보다는 경제적 접근이 우선적이라고 본다. 정치문제를 우선시하다 보면 과거 남북기본합의서 시대처럼 다른 변수가 발생할 때 중단되기 쉽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북대화도 경제와 교류를 중심으로 진행해야 한다.

▽권 전 부총리〓지금 남북문제에 있어서 세계적으로 하나의 합의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바로 ‘식량을 통한 평화(food for peace)’이다. 식량을 주어서 평화를 유지하고 왕래함으로써 남북문제를 굉장한 것이 아닌, 일상적인 것에서 뭔가를 이뤄나가는 긴 과정으로 보는 것이다. 우리는 고위급회담부터 해야 하고, 여기서 뭔가를 합의해야 이산가족이 만나게 되는 방정식을 만들고 있는데 이런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산가족도 90세 이상이 만나야 한다는 식의 일종의 ‘배급’ 형태로 접근하면 남북문제를 희화화시키는 것이다. 모든 접근방식에서 배급이라는 형태를 갖는다면 좋지 않다.

□주변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해 나갈 것인가

▽이 교수〓우리가 과거에 뭘 잘못했고 지금은 무엇이 문제인지를 반성함으로써 방향을 정립해야 한다. 북한 내부와 남북관계, 대외적인 문제 등 변수가 너무나 많다. 주변문제만 하더라도 미국에서 클린턴 정권이 부시 정권으로 바뀐 뒤 남북관계에 영향을 많이 주고 있는 상황이다.

▽권 전 부총리〓남북문제에 대한 해결방안 중 하나로 제시된 것이 클린턴 행정부 때의 페리 프로세스이다. 페리 전 미 국방장관을 만났을 때 이 시나리오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변수가 북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이라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남북정상회담도 마찬가지이지만 중요한 것은 김 위원장의 호의가 있으면 잘되고, 호의가 없으면 잘 안된다는 방정식으로 시나리오를 고착화시키면 향후 문제 해결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얘기했다. 남북문제는 잘 진행되다가도 뜻하지 않게 문제가 발생해온 것이 과거의 흐름이었다. 따라서 김 위원장의 반응과는 별도로 어떤 독립된 시스템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

▽이 교수〓남북관계를 해결하는데 미국과 중국과의 관계가 특히 중요하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강대국들은 우리에게 초점을 맞추지 않고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왔다. 물론 김정일 위원장에게만 초점을 맞춰서는 안 된다. 그러나 주변 외세가 우리의 문제를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풀어줄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래서 남북관계 개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옳다고 본다.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을 어떻게 볼 것인가

▽이 교수〓현재의 남북관계가 중요한 것은 시기상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이 인내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노력과 실력을 분출함으로써 통일의 기회를 획득한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우리도 긴 과정에서 보면 지난해 남북정상회담이 통일의 과정에서 상당히 의미있는 일이라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 남북문제가 국내의 정쟁거리가 되면 곤란하다. 기본적으로 주변 외세는 남북관계를 자신들의 패권 기준에서 보기 때문에 우리가 정쟁으로 실수하게 된다면 광복이후 남북관계를 잘못 관리했던 경험이 재현될 수도 있다. 물론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 문제가 마치 남북관계나 미래의 유일한 변수인 것처럼 생각하는 현재의 분위기가 우려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오면 안된다느니, 꼭 와야 한다는 등의 단순논리로 지나친 정쟁화 양상을 보이는 것은 건실한 남북관계 발전에 오히려 역행될 수 있다.

▽권 전 부총리〓지난해 남북 정상회담은 통일이란 긴 호흡에서 보면 하나의 밀알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통일 문제를 거론할 때마다 정상회담과 연결시키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는 기본적으로 북한을 바라볼 때 김일성(金日成), 김정일 부자에게만 초점을 맞추는 것과 같다.

▽이 교수〓남한의 경제는 과거 분단시기와 비교할 때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있어서 희망을 주는 조건이다. 남북관계를 풀어나가는데 경제력을 바탕으로 이끌어나가는 것이 북한을 경제개발로 이끌고, 개방을 시키는 길이기도 하다.

□남북관계를 어떻게 안정적으로 유지할 것인가

▽이 교수〓남북문제는 우리가 스스로 풀어나가면서 주변국의 협조를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총풍이나 북풍처럼 남북문제를 국내 정치에 이용하는 것은 남북관계뿐만 아니라 우리의 대미, 대중관계에서도 협상력을 약화시키게 된다. 남북문제에 대한 초당적인 컨센서스를 성숙시키고 발전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난해 남북정상회담은 그동안의 대결적인 관계와 분위기를 바꾸는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 문제 등을 두고 우리 사회 내부에서 정쟁거리가 된 것은 부정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남북 화해·협력정책 그 자체는 당위이고 방향성도 옳았는데, 이를 정치인들이 정파적인 이해관계에서 다루다보니 방향을 잃은 것이다. 이제라도 큰 흐름에 대한 공감대 형성을 통해 남북문제에 있어서는 초당적인 의견 합일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권 전 부총리〓공감한다. 북한문제를 풀어나갈 때 주변국을 설득하는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 92년 남북 기본합의서를 채택하면서 핵문제만 따로 강조한 측면이 있었다. 미국 정부가 북한 핵문제에

집착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대응방식이 서툴렀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난해 클린턴 정부가 페리 프로세스에 따라 북한과 협상을 추진할 때 미사일문제를 넘어 과감히 진행했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92년 기본합의서 때에도 미국이 완벽한 핵사찰을 주장해서 잘 진행되지 않았다. 클린턴 정부가 이번에도 미사일문제를 양보하지 않았기 때문에 부시 행정부로 넘어서면서 남북관계가 정체되고 있는 것이다. 좀더 큰 틀로 접근할 수 있도록 주변국을 설득하는 노력이 중요하다.

▽이 교수〓미국이 한반도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추는 게 아니라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맞춰서 문제를 풀어나가려다 보니 일이 어렵게 되고 있다. 우리도 여야가 대북정책의 컨센서스를 만들어야 한다. 남북문제는 정쟁에서 벗어나야 대외적으로도 힘을 받게 된다.

▽권 전 부총리〓남북문제는 너무 일희일비하지 말고 꾸준히 봐야 한다. 현 정권의 대북정책이 아직 행사 이상의 실질적인 진전은 이루지 못했지만, 서두르지 않고 진행하다 보면 남북관계의 큰 흐름을 이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권오기▼

△1932년 출생

△서울대 법대 졸

△동아일보 편집국장, 사장

△신문편집인협회 회장

△부총리 겸 통일원장관

△동아일보 21세기평화재단 이사장(현)

▼이호재▼

△1937년 출생

△미국 애덤스대 졸

△미국 시카고대 대학원 졸

△국제정치학회장

△고려대 EU 연구센터 소장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현)

<정리〓김영식기자>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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