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국어학자 유열씨 만난 딸 "벌써 1년이 갔네요"

  • 입력 2001년 8월 3일 18시 12분


1년전 북한의 국어학자 유열씨와 부녀상봉을했던 딸 인자씨와 돌을 맞은손녀 여울이
1년전 북한의 국어학자
유열씨와 부녀상봉을
했던 딸 인자씨와
돌을 맞은손녀 여울이
“여울이가 할아버지의 품에 안길 수 있는 통일의 그날이 언제나 올는지….”

1년 전 8·15 남북이산가족 1차 상봉 때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상봉장에서 북한 국어학자인 아버지 유열(柳烈·83·사회과학원 언어학연구소 교수)씨의 무릎에다 얼굴을 파묻고 목놓아 울던 딸 인자(仁子·61·부산 연제구 연산4동)씨. 당시 유열씨가 이름을 지어준 인자씨의 손녀 ‘임여울’양(본보 2000년 8월18일자 A26면 보도)이 4일 돌을 맞았다.

여울이의 이름은 유열씨가 3일간 서울에 머물면서 고향과 딸에게 남긴 소중한 선물. 그래서인지 인자씨의 여울이에 대한 사랑은 애틋하기만 하다. 그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칠 때마다 ‘나와는 너무나 닮은 아버지의 그 모습’을 여울의 눈망울에서 찾고 또 찾아보곤 한다.

유열씨는 상봉 당시 딸 인자씨가 “아들이 며칠 전 딸을 낳았는데 아직 이름을 짓지 못했다”고 하자 이 이름을 지어 주었다. 당시 유열씨는 이 이름에 대해 “남과 북의 모든 마음을 담은 크고 작은 시냇물들이 합수(合水)의 여울목에 다다라 깊은 강, 넓은 바다를 향해 흘러간다는 뜻”이라고 설명했었다.

“엊그제 뵌 것 같은 데 벌써 1년이 지났어요. 예쁘게 큰 여울이의 모습을 보여 드릴 수 없는 게 안타깝기만 합니다.”

인자씨는 상봉 당시 아버지의 모습을 담은 사진첩을 품에 꼭 껴안으며 끝내 울먹이고 말았다.

그는 “나는 아버지를 만나 손녀의 이름까지 받았지만 4, 5차 이산가족 만남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사람들의 마음은 오죽하겠느냐”며 미상봉 이산가족들의 아픔을 대변하기도 했다.

특히 그는 최근 남북관계가 냉랭해지면서 면회소 설치는 고사하고 곧 이루어질 것만 같던 전화통화나 자유로운 서신왕래도 물거품이 되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고 말했다.

인자씨는 북에 있는 아버지를 그리며 가족들이 함께 모여 조촐하게 ‘여울’이의 돌잔치를 갖기로 했다.

여울이의 아버지 임태형(林泰亨·32·부산 동아대병원 레지던트)씨는 “할아버지의 뜻처럼 딸을 맑고 아름답게 키우겠다”며 “여울이가 한 번이라도 할아버지를 불러볼 수 있도록 오래오래 살아 계시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인자씨는 6·25전쟁 당시 서울에서 살다가 1·4후퇴 때 외삼촌을 따라 혼자 경남 진주로 내려온 것이 가족들과 영원한 이별이 되고 말았다. 당시 홍익대 교수였던 아버지와 어머니, 동생 3명과는 그 후 영영 소식이 끊기고 말았다.

<부산〓조용휘기자>silen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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