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車 정부종용 거부]'대북사업 승계설' 초동진화

  • 입력 2001년 4월 8일 23시 24분


현대자동차가 8일 대북사업에 나설 뜻이 없음을 이례적으로 강조하고 나선 것은 이 문제에 밋밋하게 대응할 경우 정몽헌(鄭夢憲) 현대아산이사회 회장의 현대그룹을 대신해 ‘덤터기’를 쓸지 모른다는 위기감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기회에 “현대와 현대차는 다르다”는 점을 공개적으로 밝혀 ‘대북사업 승계설’의 불씨가 번지는 것을 초동 단계에서 막아야 한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정몽구(鄭夢九) 현대기아차 회장이 방북할 계획이 없다고 거듭 밝힌 것도 같은 맥락. 현대차 고위 관계자는 “막대한 자금을 들여 성과가 불투명한 대북사업에 뛰어드는 것은 다임러크라이슬러 등 합작 파트너는 물론 시장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사운을 걸고 대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몽구 회장은 선친인 정주영(鄭周永) 전 현대 명예회장의 별세 이후 “현대그룹의 법통(法統)은 현대기아차가 계승한다”고 강조하면서 현대 가문의 장자로서 활발하게 활동해왔다. 형식 논리만으로 치자면 선친이 대북사업의 첫삽을 뜬 만큼 ‘장자’로서 일정부분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도 나올 법한 상황이다.

현대차는 정부 일각에서 이런 논리를 들어 대북사업 참여를 종용하는 움직임을 보이자 몹시 부담을 느낀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차가 남북경협의 새 대안으로 거론된 것은 정몽헌 회장 휘하의 현대 계열사 대부분이 대북사업을 꾸려갈 만큼 여유가 없기 때문. 현대의 대북사업을 전담하는 현대아산은 금강산 사업에서만 4000억원 가량의 적자를 내 현 상태가 지속되면 자본잠식이 불가피한 것으로 관측된다.

현대차 관계자는 이에 대해 “정몽구 회장은 정주영 전 명예회장의 창업정신을 잇는 것이지 사업까지 짊어지는 것은 아니다”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 정몽구 회장이 최근 들어 직원조회 등을 통해 부쩍 수익성을 기업경영의 최우선 원칙으로 강조하고 나선 것도 정부측 기류를 사전 차단하려는 포석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현대 가문 가운데 자금여력이 있는 현대차가 완강히 대북사업 참여를 거부함에 따라 현 정부 최대 치적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대북사업은 중대한 기로에 서게 됐다.

<박원재기자>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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