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구매 과정의 이면]무기도입은 변수많은 외교싸움

  • 입력 2001년 2월 19일 19시 12분


콜린 파월 미국 국무장관이 7일 한미외무장관회담에서 미 보잉사의 F15K 전투기에 대해 ‘홍보성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미국의 대한(對韓) 무기구매 압력이 새삼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벌써 “전통적으로 군수업체와 밀접한 관계인 미 공화당정부가 한국을 비롯한 우방국들에 노골적으로 무기구매 압력을 가해올 것이라던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무기도입 사업은 경제적 기술적 요소만이 아니라 정치적 상황까지 고려해야 하는 매우 복잡미묘한 문제. 그만큼 외교적 정치적 협상의 산물이 되기 쉽다. 미국의 대한 무기구매 압력의 실상과 정부의 대응을 살펴본다.

▽한국은 최고의 무기수출시장〓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무기구매 압력에 대해 국방부 관계자들은 대체로 “그게 어제오늘의 일이냐”는 반응을 보였다. 무기수출은 군수업체엔 사활이 걸린 사안인 데다 미국으로서는 군사동맹관계를 내세워 한국 무기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려왔기 때문이다.

올해 안에 FX, AHX, 차기 대공미사일(SAMX) 등 각기 수조원에 달하는 대형 전력증강사업의 기종을 선정하게 돼 있는 한국으로선 미국 러시아 프랑스 등 각국의 치열한 로비 각축장이 될 수밖에 없다.

특히 FX사업의 유력한 후보기종인 미국의 F15 구매압력은 오래 전부터 시작됐다.

99년 10월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연례안보협의회의(SCM)에서 당시 윌리엄 코언 국방장관은 불쑥 “연합작전에서 상호운용성(inter―operability)이 중요하다”며 노골적으로 미국 방산물자의 구매를 요구했다.

지난달 29일에는 미 보잉사의 제리 대니얼스 방산부문 사장이 계룡대로 길형보(吉亨寶) 육군, 이수용(李秀勇) 해군, 이억수(李億秀) 공군 참모총장을 잇달아 방문했다. 3군 총장이 일제히 미 방산업체 대표를 만나 준 것은 미국의 영향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대목.

▽기종 결정 연기는 고육책인가〓국방부는 지난해 11월 3일 차기잠수함(KSS2)사업 기종을 독일 214잠수함으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이미 오래 전 기종이 결정됐지만 프랑스와의 외교관계를 고려해 발표를 연기했던 것. 실제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10월20∼22일)에 참석한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프랑스 잠수함 구입을 강력히 요청했다는 후문이다.

내달 초로 예정된 한미정상회담에서도 FX사업 등 한국의 전력증강사업은 ‘드러나지 않는 최대 현안’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자연히 정부의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다. 정부로서는 올해가 대북정책을 둘러싼 한미관계의 틀을 새로 짜는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당초 7월(FX), 9월(AHX)로 예정된 기종 결정 시기를 연말로 늦추면서 ‘서울 에어쇼의 성공적 운영에 필요해서’라고 밝혔지만 이는 표면적 이유에 불과하다.

정부 관계자는 “대형 무기도입 사업은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유일한 지렛대 아니냐”고 말해 무기도입문제가 대북정책을 놓고 거꾸로 미국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쓰여질 수 있음을 시사했다.

▼전력증강사업이란…전투기-공격헬기등 사업규모 8조 넘어▼

정부가 올해 추진할 주요 전력증강사업은 공군의 차세대 전투기(FX)와 차기 대공미사일(SAMX), 육군의 차세대 공격헬기(AHX) 등 3개 사업. 각각 2조∼4조여원에 달하는 초대형으로 그동안 경제난으로 미뤄졌던 사업이 올해 한꺼번에 몰린 것.

▽FX사업〓장거리 정밀타격능력을 갖춘 전천후 다목적 최신항공기 2개 대대를 도입하는 것. 미 보잉사의 F15K, 프랑스 다소사의 라팔, 러시아 로스브로제니에사의 SU35, 37, 유럽컨소시엄의 EF2000 타이푼 등 4개 기종에 대해 지난해 말 해외 시험평가를 마친 상태. 현재 F15K와 라팔이 미세한 우세를 보이고 있지만 기종결정이연말로 미뤄지면서 후발 기종의 추격전도 치열해질 전망이다.

▽AHX사업〓육군에 전천후 공격헬기 2개 대대를 창설하기 위한 사업. 지난해 국회 예산심사에서 713억원을 계상했다가 200억원이 삭감되는 등 논란이 많았지만 국방부는 예정대로 강행한다는 방침. 미 보잉사의 AH64D 아파치 롱보와 벨사의 AH1Z 바이퍼, 러시아 카모프사의 KA52K와 밀모스코사의 MI27N 등 미국 2개, 러시아 2개 기종이 각축 중이다.

▽SAMX사업〓도태시기가 지난 나이키허큘리스 지대공 미사일을 대체해 2개 대대를 창설하려는 것. 당초 참여의사를 밝혔던 러시아가 지난해 8월 추가제안요구서 접수를 거부해 미국 레이시온사의 패트리어트 미사일만 단일후보로 올라있으나 턱없이 비싼 가격이 문제다.

<이철희기자>klimt@donga.com

주요 무기도입사업 추진현황
사 업사업규모기종선정시기(예정→조정)추진현황도입예정시기
차세대 전투기
(FX)
4조2000억원2001년 7→11월 이후해외시험평가:2000년8∼12월2004∼2007년
차세대 공격헬기
(AHX)
2조1000억원2001년 9→11월 이후해외시험평가:
2001년2∼4월
2004∼2006년
차기 대공미사일
(SAMX)
2조300억원2001년 내→사업유보 검토러시아 포기:
2000년8월
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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