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티지 발언 파문]역풍 만난 '햇볕'…한-미 긴장예고

  • 입력 2001년 1월 29일 06시 07분


조지 W 부시 미국 공화당 정부의 대북 강경노선에 대한 우려와 그에 따른 한미간의 불협화음 조짐이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

리처드 아미티지 미 국무부 부장관 내정자가 최근 워싱턴에서 민주당 한화갑(韓和甲)최고위원 등을 만난 자리에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에게 꼭 전해달라”며 민주당 한화갑(韓和甲) 최고위원에게 털어놓은 말은 ‘내정간섭’에 가까운 느낌마저 주는 것이다.

그가 우방국의 정책용어 사용에 불만을 털어놓고 한국 정부가 북한에 끌려다니는 측면이 있다는 등의 발언을 한 것은 외교관례상으로도 납득하기 어렵다는 게 정부 관계자들의 반응이다.

그럼에도 아미티지 내정자의 발언은 국내 보수층이 가져왔던 대북정책 인식과 일맥상통한다는 점에서 앞으로 한국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을 둘러싸고 한미간은 물론 국내의 찬반 논란이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

▽‘햇볕정책’ 용어 논란〓외교통상부 관계자는 “그동안에도 영문으로는 햇볕정책이란 용어를 쓰지 않았으며 남북정상회담 이후로는 우리도 이 용어를 쓰지 않고 있다”며 “‘대북 포용정책(en―gagement policy)’이나 남북이 함께 한다는 의미로 ‘대북 화해 협력정책’이란 용어를 주로 사용한다”고 말했다. 아미티지 내정자가 이런 사정을 잘 모르고 한 얘기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아미티지 내정자가 이 용어의 폐기를 건의한 것은 개인적 성향에 기인한 측면도 있지만 그 용어가 북한에 지나치게 유화적이라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대북 관계에서 철저한 ‘상호주의’와 ‘검증’을 요구하는 공화당의 정책과 한국이 추진해온 대북 포용정책의 방식이 맞지 않음을 밝힌 것으로도 해석된다는 것.

미 공화당의 제임스 베이커 3세 전 국무장관이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북한과의 합의는 반드시 검증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합의도 단순한 ‘말의 성찬’이 돼서는 안된다”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 베이커 전장관은한국 정부가 북―미 관계의 역사적 진전으로 평가했던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의 방북에 대해서도 “별다른 성과가 없기 때문에 진전이라고 평가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폄훼했다.

▽북한 위협 문제〓정부 관계자들은 이 문제가 앞으로 한미, 북―미, 남북 관계 모두의 ‘아킬레스건’이 될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북한 재래식무기의 감축과 전방배치 병력의 후방이동은 남북간 신뢰구축과 긴장완화 조치가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을 때에야 본격적으로 논의할 사안이라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또 이 문제는 한반도평화체제 구축의 핵심적인 요소로 중장기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그러나 미 공화당측은 이 문제를 ‘북한이 자신의 변화를 보여줄 수 있고 그것을 검증 받을 수 있는 확실한 방안’으로 여기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아미티지 내정자의 발언에 대해 미 외교정책라인에 포진한 군부인사들의 성향과 미국 군수업체의 영향력을 지적하기도 한다. 부시 행정부가 강행을 천명한 국가미사일방어(NMD)체제의 명분이 ‘북한 위협’인 만큼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계속 강조할 필요가 있다는 해석이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공화당의 요구에 대해 북한이 호응으로 나오면 한반도의 안보에 긍정적으로 작동하겠지만 그 요구가 너무 경직되면 대북 포용정책의 기존 틀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어 걱정된다”고 말했다.

<부형권기자>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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