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와 부시정부]"투명성 없인 지원도 없다"

  • 입력 2001년 1월 19일 18시 37분


“접근 없이 지원 없다(No Access, No Aid).”

국제기구인 세계식량계획(WFP)의 대북(對北) 지원원칙이다. 분배의 투명성이 보장되지 않는 한 한톨의 쌀도 지원할 수 없다는 말이다. 미국이 주도해 ‘미국 적십자사’라고도 불리는 WFP의 이런 원칙에는 구호물품이 북한 당국에 의해 군사적으로 전용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짙게 깔려 있다.

실제로 WFP는 북한에 식량을 지원하는 조건으로 엄격한 현지 모니터링(감시)을 요구하고 있다.

5곳의 지방사무소에 56명의 요원이 상주하면서 분배실태를 감시하고 있고, 211개 지역 가운데 모니터링 요원의 접근을 제한한 평북 영변, 평양 중구 등 48개 지역은 지원을 중단했다.

차기 미 공화당 행정부는 대북 지원의 투명성을 보다 엄격히 요구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콜린 파월 국무장관 지명자는 17일 인사청문회에서 “우리가 북한으로부터 반대급부로 얻는 것이 확실하지 않는 한 북한에 어떤 것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WFP에 따르면 북한은 앞으로도 매년 150만t의 식량이 부족하다.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북한이 ‘행동으로 성실성을 입증하지 않을 경우’ 대북지원에 계속 ‘호의’를 보이지 않을 것임을 천명하고 있다.

 한반도와 부시정부 분야별 점검
- '대북정책 시금석'의 향방
- 파월 발언/대북관계 채찍·당근 병행
- "투명성 없인 지원도 없다"
- "미사일방어체제 강행" 新냉전 가능성
- 주한 병력배치 바뀌나
- 거세질 시장개방 요구

이는 인도적 차원의 식량지원도 영향받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부시 행정부는 빌 클린턴 민주당정부가 핵과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WMD)를 볼모로 한 북한의 흥정에 끌려다녔다고 본다. 친(親)공화당 성격이 강한 미국외교협의회 로버트 매닝 수석연구원의 최근 발언은 부시진영의 이런 인식을 잘 보여준다.

“부시행정부는 북한과 클린턴행정부의 협상이 일종의 ‘사기’라고 보고 있다.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은 아무 것도 주는 것 없이 이득을 챙기고 군사적 위협도 유지함으로써 이 두가지를 다 차지하려 하고 있으나 이제는 용납되지 않을 것이다.”

부시행정부의 엄격한 상호주의와 투명성 요구는 북한과 마찰을 빚을 수 있으며, 한국에도 간접적 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미국은 98년 금강산관광이 시작될 때 현금으로 관광대가를 지불하면 군사비로 전용될 수 있다며 이에 반대했고, 대북 전력지원에도 부정적이다.

부시행정부의 이같은 대북정책의 기조는 정부의 대북포용정책에 비판적인 한나라당과 보수층에 힘을 보태 줄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은 이미 “(파월 지명자의 발언은) 우리 당이 우려하면서 지적해 왔던 관점들과 유사하고 지극히 타당한 시각”이라며 “정부의 일방적 퍼붓기식 대북정책도 수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대북포용과 교류협력을 근간으로 한 정부의 대북정책이 미국과 국내 보수세력으로부터 협공을 당할 경우 그 추진력이 현저히 떨어질 수도 있다.

순기능도 있을 수 있다. 미국의 투명성 요구에 북한이 일정 수준 ‘호응’함으로써 남북 당국의 입장이 오히려 강화될 가능성도 있다. 물론 이는 북한의 태도에 달렸다.

<하태원기자>scooo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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