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부 돈 리스트 파문]구여권 자금배분 행태

  • 입력 2001년 1월 9일 18시 46분


9일 일부 언론에 공개된 ‘안기부 돈 선거자금 유입’ 리스트는 구 여권의 정치자금 수급과 배분이 얼마나 멋대로 이뤄졌는지를 그대로 드러내준다.

▽안기부자금만 있었나?〓공개된 명단에는 96년 15대 총선 당시 같은 민주계 중에서도 노승우(盧承禹)전의원이나 박관용(朴寬用)의원 등에게는 4억원 이상의 거액이 지원된 반면 박종웅(朴鍾雄·3000만원)의원이나 김길환(金佶煥·3000만원)전의원 등에게 지원된 액수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이처럼 지원액수에 큰 차이가 나는 것은 당시 구여권이 조성한 선거자금이 그 밖에도 많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당시 신한국당은 선거를 앞두고 안기부자금 외에도 지정기탁금, 후원금 ‘기업체 직접 지원금’ 등 가능한 재원을 총동원했다는 것이 정설. 즉 안기부자금 지원액이 적은 사람은 다른 자금의 배분액이 상대적으로 많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당사자만 아는 계좌로 직접 송금〓구여권의 한 자금담당관계자는 “당시 자금 전달은 사무총장이 할당액을 정해주면 해당 지원대상자와 직접 통화, 계좌번호를 받은 뒤 이 계좌에 입금시키는 방식으로 이뤄졌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거액을 현찰로 인출할 경우 말썽이 날 소지가 있는 만큼 현찰 전달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수억원을 한꺼번에 송금하는 것도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대개 3000만∼5000만원 단위로 분산 송금했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일부 후보들은 두 개 이상의 계좌를 개설해 지구당 회계책임자가 관리하는 계좌에는 소액만 입금되도록 하고 나머지는 자신의 개인 계좌에 입금토록 하는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선거자금 외에 후보 개인의 사적인 용도로 사용된 돈도 많았다는 것.

사정당국의 한 관계자는 “돈을 받은 사람 중엔 이 돈을 현재까지도 당시 계좌에 그대로 보관하고 있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차등지급 논란〓공개된 명단에 따르면, 96년 당시 신한국당 사무총장으로 선거자금과 조직을 맡았던 강삼재(姜三載) 현 한나라당 부총재가 15억원으로 가장 많은 돈을 받은 것으로 드러나는 등 지급액이 천차만별이다.

또 선거운동이 필요 없는 김수한(金守漢)전국회의장 등 일부 전국구 후보들에게도 2억원까지의 안기부 자금이 지원됐다.

뿐만 아니라 서울 송파갑의 경우 신한국당 후보인 홍준표(洪準杓)전의원과 국민당 후보인 조순환(曺淳煥)전의원에게 똑같이 4억원이 지급되는 등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도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윤승모기자>ysm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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