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 왜 위기인가]청와대-당-정 겉돈다

  • 입력 2000년 11월 30일 18시 37분


여권의 한 핵심인사는 30일 “요즘은 ‘밤새 안녕하셨습니까’가 다시 아침인사가 됐다”고 한숨을 쉬었다.

그의 한숨에는 살얼음판 같은 정국에서 여권 인사들이 느끼는 초조함이 묻어 있다. 뭔가 비상처방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임은 분명한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할지 종잡을 수 없는 방향감각 상실이 초조함의 바탕에 깔려 있다.

이 같은 방향감각 상실은 국정의 중장기전략 수립을 추진하고 ‘청와대―여당―정부’를 조율하는 여권의 컨트롤 타워에 이상이 생긴 것을 의미한다.

민주당과 청와대의 조율경로는 대략 5가지. △당 지도부―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 △당 지도부―대통령비서실장 △당 기조실장―대통령 △당 3역―대통령(주례보고) 등의 공식라인 △‘핵심측근’―대통령의 비공식라인이 그것이다.

문제는 이처럼 제각각인 경로로 각종 정보나 정책의 보고, 건의가 경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 ‘익지 않은’ 정보, 검증되지 않은 정책, 그리고 때로는 서로 상충되는 정보나 정책이 보고되고 건의되기도 하지만 이를 걸러줄 여과장치가 없어 국정 혼선이 빚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고위원 회의도 조율기능을 기대하기는 무리다. 이런저런 의견은 많이 나오지만 최고위원들간에 시각차도 크고 정치적 이해관계도 엇갈려 한 방향으로 의견이 모아지기 어려운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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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여당간의 조율기능은 더욱 취약하다. 최근 ‘농어가부채경감 특별법’ 제정 논란만 해도 그렇다. 당초 ‘특별조치’ 선에서 농민 불만을 무마하려 했던 정부는 11월 21일 농민들이 고속도로를 점거한 채 격렬한 시위를 벌이자 특별법 제정요구를 수용했다. 하지만 민주당 내에서조차 “소 잃고 외양간 고쳤다”는 비판이 많았다.

‘의료대란’도 비슷한 경우. 보건복지부장관이 전권을 가지고 의료수가 인상과 지역의보 국고지원을 본격 검토한 것은 ‘대란’ 4개월 만인 10월이었다. 정부는 그동안 ‘우는 아이에게 젖 주는’ 식으로 찔끔찔끔 의료수가를 인상해 의료계를 달래려 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두 사건에서 드러난 당정의 문제점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농민이나 의사들의 집단행동에 대한 정확한 예측과 분석의 부재. 정책결정 과정을 ‘인풋(예측 또는 투입)’과 ‘아웃풋(결정 또는 산출 )’으로 나눠본다면 ‘인풋’과정에서부터 ‘적신호’가 울리고 있는 셈이다. ‘아웃풋’과정도 그렇다. 농민이나 의사들의 요구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는데도 정부는 원칙조차 결정하지 못한 채 줄곧 끌려 다니기만 했다.

정책이 결정된 뒤 시행과정을 감시 감독하는 관리기능에도 많은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결국 ‘예측―결정―관리’라는 정책기능의 3단계 모두에서 이상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현 여권에는 아예 ‘컨트롤 타워’가 없는 게 아니냐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대통령비서실도 당정과의 단순한 연락기능만 할 뿐 조율은 전혀 주도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현 여권은 모두가 각자 뛴다”는 얘기도 같은 맥락. 이는 누가 어떤 자리를 차지하든 시스템에 따라 조직의 일원으로 기능하던 과거 여권과는 달리 현 여권은 집권 3년이 가깝도록 야당 체질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또 국무회의 등 각종 회의는 역대 어느 정권보다 많이 열리고 있지만 그 효과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여권 인사들도 적지 않다. 사전에 주요정책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와 충분한 조율 없이 회의를 해봤자 논의가 피상적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국정운영 시스템과 컨트롤 타워의 부재가 ‘인치(人治) 논란’의 직접적 원인 중 하나가 되고 있다.

<윤영찬기자>yyc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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