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국무 방북 의미]北核등 현안 사전조율

  • 입력 2000년 10월 19일 18시 54분


북한과 미국 관계가 북한 조명록(趙明祿)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의 워싱턴 방문(9∼12일)이후 불과 2주일이 안돼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부장관의 북한방문(23∼25일)이 이루어질 정도로 빠르게 개선되고 있다. 한국전쟁 이후 50년간 적대시해 온 양국이 이렇게 단기간 에 고위급 인사를 교환하는 것은 통상 적대국간의 국교정상화에 많은 시간과 절차가 소요되는 외교관행에 비춰볼 때 매우 이례적이다.

북―미가 이처럼 관계개선을 서두르는 것은 무엇보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임기가 내년 1월에 끝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임기 말에 화려한 외교 치적을 남기고 싶어하는 클린턴 대통령으로선 다음달 7일 대통령선거 이후 새 당선자에게 현실정치의 무게중심이 쏠리기 전에 가급적 빨리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과 양국 현안 해결을 위한 돌파구를 여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다음달 중순으로 예정된 브루나이와 베트남 순방에 맞춰 북한에 가기 위해선 사전정지작업 차원에서 올브라이트 장관의 평양행을 최대한 앞당기는 것이 급선무였을 것이라는 게 외교가의 관측이다.

워싱턴의 한 외교소식통은 “클린턴 대통령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가장 치열하게 싸웠던 베트남과 북한을 잇달아 방문함으로써 이들 국가와의 적대관계를 극적으로 청산하는 역사적 계기를 만들려고 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올브라이트 장관의 방북은 이 같은 정치적 고려 외에 윌리엄 페리 전 대북정책조정관이 제시한 ‘페리 프로세스’를 이행하는 측면도 있다. 미국은 당초 지난해 연말이나 올 초에 김용순(金容淳)노동당비서 등 고위관리를 워싱턴에 초청한 뒤 올브라이트 장관을 답방 형식으로 북한에 보내는 방안을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북한측이 고위급 인사의 파견을 미루는 바람에 이 같은 구상이 지연돼 오다 조명록 부위원장의 방미로 한꺼번에 봇물이 터지 듯 일이 풀리게 됐다는 것.

올브라이트 장관은 평양에 가면 북한측과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문제를 주로 협상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의 미사일 개발 및 수출중단과 핵문제 등 주요 현안에 대해선 올브라이트 장관의 방북을 통해 북―미간에 어느 정도 의견접근이 이루어지더라도 클린턴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간의 정상회담에서 타결점을 찾는 모양새를 취하게 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예상이다. 올브라이트 장관은 이밖에 북―미가 비교적 쉽게 합의할 수 있는 사회 문화분야의 교류 증진 방안을 모색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워싱턴〓한기흥특파원>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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