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장관급회담]숨가빴던 막판 협상 뒷얘기

  • 입력 2000년 8월 31일 16시 35분


남북은 2차 장관급회담에서 공동보도문을 도출해 내기까지 상당한 진통을 겪었다.

이 때문에 지난 1차 회담 당시 마지막날 오전 10시 공동발표문을 발표했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당초 예정 시각 10시를 훨씬 넘긴 오후 늦게서야 나올 수 있었다.

한 남측 대표는 "1차 회담 때와 달리 공통분모를 찾는데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며 "둘째 아이 낳기가 더 쉽다고 그러는데 이번에는 난산중의 난산이었다"고 말해 협상과정이 쉽지 않았음을 시사했다.

회담 마지막날인 31일 오전 남북 양측 대표단은 협상이 순탄치 않음을 보여주듯 무거운 얼굴로 분주하게 움직였다.

남측 대표단들은 이날 11층에 마련된 상황실에 모여 회의를 거듭했으며 서울본부와 회신을 계속 주고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2층에 마련된 북측 상황실에는 김령성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참사 권호웅 백문길 아태평화위원회 참사 등 회담관계자들이 수시로 들락거리며 상황을 점검했다.

특히 1차 회담 당시 4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회담 대표로 참석해 눈길을 모았던 량태현 내각 참사는 오전 10시40분께 수원(수행원)과 함께 급히 호텔을 빠져나가 모처로 향하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남북의 의견차이가 가장 컸던 부분은 군 직통전화 개설문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남측 군사분야 대표로 참석한 김종환 국방부 정책보좌관은 "북측 인사들과 이 문제를 두고 많은 얘기를 했다"고 말했다. 이는 북측 대표단에 이 분야의 전문가가 없었기 때문이라는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이번 회담에서도 1차 때와 마찬가지로 비공개 접촉을 통해 타협점을 찾아낼 수 있었다. 실제로 이날 새벽까지 남측 대표인 서영교 통일부 국장과 북측 대표인 최성익 조평통 서기국 부장이 호텔에서 막후 협상을 가진데 이어 오전에도 계속했다는 후문이다.

두 사람은 30일 저녁에 있었던 환송만찬에도 참석하지 않은채 호텔에 남아 이견을 절충했다.

남측은 분명한 입장을 전하고 북측과의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했다.

30일 오전 회의가 끝난 직후 박재규 수석대표가 실무 책임자만을 배석시킨채 북측 전금진 단장과 단독접촉을 하고 이날 오후 있은 대동강 참관에서 남측대표들이 각각 북측 파트너와 1대1로 1시간 가까이 의견을 교환한 것이 그 대표적인 예다.

한 남측 대표는 대동강 유람선상에서 대화도중 북측 대표가 자꾸 화제를 돌리고 짐짓 딴전을 피우자 상대에게 더욱 바짝 다가앉아 열심히 설명하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평양=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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