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북자 가족의 설움 "남도 북도 우릴 버렸어요"

  • 입력 2000년 8월 20일 19시 07분


1971년 1월 납북된 희영호 37호 갑판장 박동순씨(68·당시 39세)의 아내 임희순(林熙順·65·부산 사하구 신평동)씨. 임씨는 납북자 가족으로 30년 가까이 살아온 자신들의 처지를 “남과 북 모두로부터 외면받은 삶”이라고 설명한다.

임씨 가족은 당시 경남 남해의 조그만 어촌에서 풍요롭지는 않지만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하지만 박씨가 탄 희영호가 납북된 이후 임씨 가정은 파탄에 가깝게 변했다.

남편이 납북된 뒤 학비가 없어 중학교를 중퇴한 큰딸 연옥씨(45)가 회사에 취직해 벌어온 수입과 큰아들 성윤씨(39)가 공사장에서 벌어오는 수입으로 근근이 하루하루를 살아야 했다.

궁핍한 생활보다 임씨를 더욱 아프게 한 것은 아들 성윤씨가 창원의 한 기계공고 시험에 응시했다가 아버지가 ‘납북자’라는 이유로 불합격된 것. 임씨 가족을 괴롭힌 또 하나는 경찰의 끊임없는 감시. 임씨 가족이 이사를 할 때마다, 심지어 딸들이 결혼할 때도 경찰은 어김없이 나타나 이사비와 결혼비용에 대해 조사했다.

남편이 납북된 뒤 사망처리하라는 주위의 권유를 계속 뿌리치던 임씨는 79년 8월 눈물을 흘리며 남편의 ‘사망신고’를 했다. 아들의 고교 불합격처리를 본 친지들이 조카들의 취업 등을 걱정하며 사망신고를 종용하는 데 더 이상은 버틸 수가 없었기 때문.

남편이 납북된 음력 12월 8일에 맞춰 매년 제사도 지낸다. 임씨는 “전쟁통에 헤어진 이산가족은 만나게 해주면서 납북된 사람들에 대해서는 생사확인조차 하지 않는 정부에 분통이 터진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87년 1월 납북된 동진호의 어로장 최종석씨의 맏딸 우영씨(30)의 경우도 마찬가지. 현재 납북자가족모임의 대표를 맡고 있는 우영씨는 이번 이산가족 상봉과 비전향 장기수 북송 결정을 보고 “2세를 낳는다면 절대 한국 국적을 갖게 하고 싶지 않을 만큼 배신감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우영씨는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졌던 15일과 17일 워커힐호텔을 찾았다. 아버지의 사진을 들고 북에서 온 이들에게 아버지의 생사를 물어 볼 셈이었다. 하지만 우영씨를 맞은 것은정부 기관원들. 우영씨는 이들에 막혀 끝내 호텔에 들어가지 못했고 이산가족들의 눈물어린 상봉을 멀리서 쓸쓸히 지켜봐야만 했다.

우영씨는 “아버지가 납북된 이후 13년 동안 정부로부터 단 한 통의 위문편지조차 받은 적이 없다”며 “국민이 납치돼 10여년간 소식이 끊겼는데도 그 국민을 되찾기 위해 아무 노력도 하지 않는 이 정부는 도대체 어느 나라 정부인지 모르겠다”며 치를 떨었다.지난해 3월 국가정보원이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휴전 이후 납북자는 모두 3756명이며 이중 454명이 아직 돌아오지 못했다.

<이현두·이완배기자>ruch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