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향장기수 송환]83명 생존…4, 5명씩 공동체생활

  • 입력 2000년 8월 18일 18시 38분


사상 전향을 끝까지 거부하며 수십년간의 옥고를 감수했던 비전향 장기수 62명이 9월 2일 북송될 예정이어서 이들은 어떤 사람인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고집스러운 빨갱이’ ‘고루한 사회주의자’ 등으로 손가락질 받으면서도 수십년간의 감옥생활을 견디며 끝내 전향을 거부해온 이들의 면모를 살펴본다.

▽비전향 장기수〓참여연대 민가협 등 30개 인권 종교단체들이 지난해 비전향 장기수들의 송환을 촉구하며 결성한 ‘비전향 장기수 송환추진위원회’는 비전향 장기수를 ‘국가보안법, 반공법, 사회안전법으로 인해 7년 이상 형을 복역하면서도 전향하지 않은 장기 구금 양심수’로 규정하고 있다.

이 단체는 전체 비전향 장기수는 102명이나 이중 13명은 그동안 사망했고 이인모노인이 이미 북송돼 현재 생존자는 88명이라고 밝히고 있다.

정부도 비전향 장기수를 ‘사상전향을 거부한 채 수십년간 복역한 인민군 포로나 남파간첩’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규모도 83명으로 잡고 있어 추진위원회와 비슷한 수준으로 보고 있다.

▽행위에 따른 분류〓비전향 장기수들은 붙잡히게 된 계기와 시대적 차이를 기준으로 크게 5개 그룹으로 분류된다. △6·25전쟁 당시 북한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붙잡힌 빨치산 △50년대 이후∼60년대 초 남파간첩 △통혁당 등 남한에서 자생적으로 결성된 간첩 △70년대 이후 해외활동으로 체포된 재일동포 등 △70년대 중반 이후 인혁당 등 소위 조작간첩사건 연루 인사 등이 그것이다.

이들 중 남파간첩의 경우 한때 북한으로부터도 그 실체를 인정받지 못했던 ‘서글픈’ 시절이 있었다.

오랫동안 북한이 ‘남파 공작원은 없다’고 주장하면서 이들과 북한의 직접적인 연관성을 부정했기 때문.

하지만 북한은 90년대 들어 특정인의 이름을 거명하지 않은 채 “남한이 비인도적인 인권탄압을 자행하고 있다”는 식의 비난으로 이들의 송환을 요구하는 쪽으로 돌아섰다.

▽이들의 신념〓한때 국내에서는 이들이 전향하지 않는 이유를 “속으로는 전향하고 싶지만 북한에 있는 가족들이 보복을 당할까봐 두려워 전향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하기도 했지만 이는 상당부분 사실과 거리가 있다.

이들은 한결같이 고문과 회유, 수십년간의 옥고 속에서도 전향하지 않은 이유를 신념 때문이라고 말한다. 한 비전향 장기수는 “이 최상의 신념을 버리려면 더 나은 신념이 존재해야 하는데 그것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말하는 신념은 사회주의 등의 사상적 이데올로기라기보다는 오히려 “외세를 배격하고 자주적 통일을 이루자”는 민족적인 것에 더 가깝다. 또 이들은 직접적으로 김정일국방위원장 체제하에서 생활해보지 않았으면서도 김위원장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보이는 공통점을 갖고 있기도 하다.

▽삶과 근황〓길게는 43년간이나 복역한 뒤 출소한 이들은 지금 대부분 70∼90대 노인이 됐다. 일부는 남한에서 새로 결혼해 가족을 이루어 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4,5명 단위로 함께 모여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다.

공동체 생활의 경우 생계는 탕제원(湯劑院)이나 만물상 등을 함께 운영하거나 공공근로를 통해 수입을 마련해 왔다. 또 오랜 옥고와 고문 후유증으로 이들의 건강상태는 매우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송환추진위에 따르면 이번에 북송이 확정된 62명중 병을 앓지 않는 인사는 10명뿐이며 나머지는 대부분 암이나 고혈압 심장질환 등의 중병을 앓고 있다고 한다.

<이완배기자>roryrer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