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이산상봉]남북 두 아내 "우린 다같은 가족"

  • 입력 2000년 8월 17일 18시 57분


“인사 나눕시다. 우린 다 같은 형제요, 가족입니다.”

17일 낮 평양시내 고려호텔 오찬장에서 아주 보기 드문 광경이 벌어졌다.

월남한 뒤 남한에서 재혼한 이선행(81·서울 중랑구 망우동) 이송자(82)씨 부부가 평양에서 상봉한 북의 가족들과 한자리에 모여 인사를 나눈 것. 이선행씨는 북의 아내 홍경옥씨(76)와 아들 진일(56), 진성씨(51)를 서울아내 이송자씨에게, 이송자씨는 북의 아들 박위석씨(61)를 남편 이선행씨에게 각각 소개했다.

이후 잠시 어색함이 흐르기도 했지만 이들은 이내 회한의 50년 세월을 화제로 얘기를 나누며 “앞으로 부모와 자식, 형제간으로 서로 돕고 살자”고 다짐했다.

진일씨는 ‘새 어머니’가 된 이송자씨에게 술잔을 올리며 “아버지를 돌봐주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어서 통일이 돼서 아버지의 90세 생일상은 제가 차려드리고 싶습니다”고 말했다. 위석씨는 이선행씨에게 “아버님, 잔 받으세요”라며 술잔에 들쭉술을 따랐고 이씨는 “나는 머슴처럼 어머니(이송자씨)를 받들고 있으니까 걱정 마라”고 화답했다. 이어 위석씨와 진일, 진성씨는 서로 손을 마주 잡고 앞으로 형님 아우로 지내기로 뜻을 모았다.

특히 이송자씨는 남편의 북쪽 아내 홍경옥씨의 손을 스스럼없이 잡으며 “반갑습니다. 건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넸고 홍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송자씨는 오찬 후 북의 아들을 돌려보낸 뒤 기자들에게 “(그이가) 북쪽 부인하고 하룻밤이라도 손을 꼭 잡고 지낼 기회가 있었으면…”이라며 남편을 애틋하게 배려했다. 이씨는 더 나아가 “통일이 돼서 다시 만나면 본처를 위해 자리를 양보하겠다. 북쪽에 할아버지(이선행씨)를 보내주겠다. 그게 순리라고 생각한다”고까지 말했다.

평북 영변 출신인 이선행씨는 50년 11월 대동강으로 이동하다 임신중인 부인, 그리고 두 아들과 헤어졌고 함남 문천군에서 살던 이송자씨는 49년 월남한 남편을 찾아 서울로 왔다가 6·25전쟁이 터져 두 아들과 생이별해야 했다. 이후 두 사람은 서울에서 만나 68년 재혼했지만 북에 두고 온 가족 생각에 아이도 낳지 않았다.<평양〓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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