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트]이순원/ '통일가족-가상의 삶'

  • 입력 2000년 8월 10일 18시 55분


《소설가 이순원씨가 쓴 글을 통해 남북의 이산가족이 다시 만나 새로운 삶을 일궈나가는 모습을 그린 ‘통일가족―가상(假想)의 삶’을 소개한다.

이씨는 강원 강릉 출신으로 88년 단편 ‘낮달’로 문학사상 신인상을 받았으며 96년 동인문학상, 97년 현대문학상, 2000년 한무숙문학상을 각각 수상했다. 대표 작품으로는 장편 ‘압구정동엔 비상구가 없다’ ‘순수’와 창작집 ‘그 여름의 꽃게’ ‘말을 찾아서’ 등이 있다.》

“형, 우리도 한 번 가 보지 않을래요?”

아침에 동생한테서 전화가 왔다. 내일이 세동이 아저씨의 일흔다섯 번째 생일이다. 마침 일요일이고 하니 우리도 한번 시간을 내 강원도 강릉에 가 보자는 것이었다.

나이가 일흔다섯인데도, 그 할아버지 같은 아저씨는 우리에게 여전히 세동이 아저씨였다. 물론 마을에서 다르게 부르는 말도 있었다. 은석이 아버지라거나, 은석이 애비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렇지만 은석이라는 이름도 나보다 여덟살 많은 집안 형의 이름이다 보니 그보다 한참 어린 우리가 그냥 은석이 아버지라고 부를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얼굴도 한 번 본 적이 없는 사람을 우리는 아주 오랜 전부터 세동이 아저씨라고 불러왔던 것이다.

어릴 때 참 궁금한 것이 그것이었다. 다른 집엔 다 아버지가 있는데, 왜 은석이형 집에만 아버지가 없을까 하고. 초등학교 고학년쯤 되어서야 알았다. 은석 형 아버지, 그러니까 동네 어른이거나 집안 어른들이 말하는 세동이 아저씨는 6.25 때 의용군을 따라 북쪽으로 넘어갔다고 했다. 그렇지만 그 사실을 어른도 우리도 대놓고 말하지는 못했다.

우리가 그 아저씨를 처음 본 것은 지난해인 2002년 추석 무렵이었다. 남북간의 일이 순조로워 이제 만날 수 있는 사람은 다 만나게 되고, 또 고향을 두고 떠난 사람들의 경우 저마다 자기가 가서 살고 싶은 데 가서 살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세동이 아저씨도 북에서 다시 결혼을 해 2남 1녀를 두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쪽 부인이 몇해 전엔가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처음엔 서먹한 것도 있었다. 저쪽 북에 있는 이복 형제들에 대해 은석이형도 그랬고, 은석이형 어머니도 그랬다. 은석이형 아버지가 스물두 살 때이고 은석이 형 어머니가 스무살이던 때, 이제 막 돌이 지난 은석이를 두고 헤어진 것이라고 했다.

“오긴 뭘 와? 그냥 거기서 낳은 자식들하고 살지.”

처음엔 은석이형 어머니도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그 말을 들은 사람들 다 그것이 은석이형 어머니의 진심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은석이형 어머니는 그간의 섭섭함과 노여움을 딱한번 그렇게 표현하곤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이제, 예전의 그 꽃다운 나이에, 꽃잎처럼 안타깝게 헤어진 스무살 남짓 청춘들이 50년의 세월을 건너 그야말로 귀밑머리가 하얗게 된 다음 백발 노인으로 만나 다시 해로하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살면 남은 기간이 아까워서라도 부부 싸움을 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시골에 계신 어머니의 얘기를 들어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모양이었다.

“자네, 자꾸 그러면 나는 또 올라갈라네.”

이건 은석이형 아버지가 은석이형 어머니에게 하는 말이었다.

“창호야, 느 할애비 또 올라간다는데 짐싸 드려라. 다시 못 들어오게 대문 걸고.”

이건 은석이형 어머니가 은석이형 아버지 들으라고 일부러 손주 이름을 부르며 하는 소리라고 했다.

“그래도 내외간에 정이 얼마나 새로운 줄 아냐. 그런 사람들이 그동안 어떻게 헤어져 있었던 건지.”

그건 두 사람의 부부싸움을 보고 난 다음 우리에게 전하는 어머니의 관전평이었다.

“내외가 산책 겸 마실을 다니며 이 나무는 내가 떠날 때 팔뚝보다 조금 더 굵던 것이 지금은 이렇게 아름드리 나무가 되었다느니, 이 길은 지게 두 개 겨우 비켜다니던 길인데 지금은 자동차 두 대가 비켜다니는 큰길이 되었다 하면서 예전의 기억들을 조목조목 되짚어 가면서….”

“북쪽 자식들은요?”

“거기도 다 출가를 해 가정을 이뤘지. 사는 건 이제 고향에 와 예전 할멈하고 살아도 가끔 북에도 가 보고 하는 모양이더라. 지난 번에도 창호가 즈 에미 애비가 바리바리 싸 주는 걸 차에 싣고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시고 갔다 오기도 하고. 배다른 형제들이긴 하지만 그쪽도 이쪽도 서로 얼마나 각별하게 여기는 줄 아나. 다음 번 그 아저씨 생일 땐 그쪽 형제들도 다 내려온다고 그러고.”

(내가 지금 이 글을 쓰는 건 2000년 여름, 정말 3년 안에 이런 일이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 고향 마을 세동이 아저씨. 쉰두살의 은석이형님과 그 형님 어머니는 오늘도 아저씨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는데….)

이순원(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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