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철통보안 뒷얘기]비밀접촉 20여일만에 성사

  • 입력 2000년 4월 10일 23시 21분


남북정상회담 개최합의가 성사된 배경에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3월 9일 남북당국 간 경제협력을 제의한 ‘베를린선언’에 대한 북한측의 관심이 가장 크게 깔려 있다는 게 정부당국자들의 평가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3월15일 노동신문 논평을 통해 ‘대결정책을 벗어나 실제행동으로 긍정적인 변화를 보인다면 대화에 임할 것’이라며 당시로서는 긍정도 부정도 아닌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지만 이 같은 입장이 본격적인 남북접촉에 나서기 위한 준비과정이었던 것으로 해석된다”고 설명. 이 당국자는 “처음에는 북한 노동신문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해석했다”며 “그러나 돌이켜보니 노동신문의 반응은 북한이 그동안 비난해왔던 남한당국과의 협력사실이 알려질때 주민들이 갖게될 혼란을 사전에 줄이려는 의도였던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

▼문광부 핵심간부도 몰라▼

○…남북정상회담 합의는 남북 간 비밀접촉이 끝까지 노출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정부측은 자평.

비밀접촉 특사로 활약한 박지원(朴智元)문화관광부장관은 3월 15일 김대통령으로부터 대북접촉 ‘밀사’ 지명을 받고 같은 달 17일 상하이에서, 그리고 22일과 4월 8일에는 베이징을 각각 다녀왔으면서도 외부에는 ‘지방에 간다’고 둘러대 그의 잇단 ‘잠적’에 의문을 품은 기자들을 따돌렸다.

박장관의 이 같은 철통보안 때문에 문화관광부 핵심 간부들조차 박장관의 행선지를 몰라 비서진에게 “장관 어디 가셨느냐”고 다그치는 일까지 벌어졌다는 후문.

▼현대그룹 배후지원설 돌아▼

○…박장관이 남북 정상회담의 성사를 이끌어내기까지 금강산관광사업과 서해안공단 개발사업 등으로 북측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온 현대그룹의 지원이 있었을 것이라는 ‘현대 막후지원설’이 나돌아 관심.

특히 박장관이 송호경 북한 아태평화위 부위원장과 정상회담 개최 합의문에 서명하던 8일 현대 정몽헌(鄭夢憲)회장이 베이징에 머물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이 같은 ‘설’을 뒷받침. 게다가 박장관이 접촉한 송부위원장은 현대측의 대북사업 카운터파트였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현대의 대북사업에 관여하고 있는 한 재일동포 2세가 베이징에서 아태평화위 황철참사를 접촉해 송호경라인을 박장관에게 연결해줬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장관은 10일 기자회견에서 “정회장의 베이징 체류 사실을 몰랐으며 어떤 민간단체의 도움도 받지 않았다”고 부인.

▼"자세히 말하기는 곤란"▼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비밀접촉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김대통령과 박재규(朴在圭)통일부장관은 잇따라 동아일보와의 회견을 갖고 남북정상회담의 개최 가능성에 대해 언급.

김대통령은 지난달 30일 동아일보와의 창간 80주년 특별회견에서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남북 간에 상당한 수준의 대화가 이뤄질 것으로 본다”며 “그러나 선거를 앞두고 있기 때문에 자세히 말하기는 곤란하다”고 말했었다.

한 당국자는 “북한측이 공동 발표하기로 했던 합의를 뒤집을지 몰라 걱정했는데 10일 오전 북한방송이 ‘중대방송’ 예고를 해 가까스로 안심했다”고 소개.

<김동철기자> eastphi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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