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문건 파문]문건작성과정 갈수록 미궁

  • 입력 1999년 11월 1일 22시 55분


‘언론대책문건’ 파문은 연일 드러나는 ‘새로운 사실들’로 인해 갈피를 잡기 힘들만큼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크게 정리해 보면 파문의 중심은 두개다. 하나는 문건의 ‘작성과정’이고, 또하나는 문건의 ‘폭로과정’이다. 그리고 이 두 ‘과정’은 이종찬 국민회의부총재를 고리로 연계돼 있다. 언뜻 이 두 ‘과정’은 복잡하게 얽혀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건 인식혼란의 결과다. 실제로는 별개의 사안이다. 물론 현재 밝혀진 내용의 범주에 국한시켜 볼 때 그렇다.

▼與野 공방에만 몰두▼

따라서 밝혀져야 할 ‘실체적 진실’도 엄연히 구분돼야 할 사안이다. 그러나 현재 정치권에서 전개되는 상황은 그렇지 않다. 여야가 주장하는 사건의 ‘본질(本質)’은 완전히 상반된다. 여측은 ‘폭로과정’을, 야측은 ‘작성과정’을 본질이라고 주장하며 정치적 공방에만 몰두하고 있다.

국민회의는 지난달 31일 급기야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의 문건파문 연루의혹을 집중 제기하고 나섰다. 국민회의는 이번 사건을 ‘전형적인 정보매수’ 사건으로 규정하면서 “문건 폭로자인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의원은 물론 이총재까지도 국정조사의 증인으로 채택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민회의가 주장하는 이총재 ‘연루부분’은 이총재가 28일 밤 평화방송 이도준(李到俊)기자를 제보자로 발표하기 직전 단둘이 만났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이 사실에서 여러가지 유추할 수 있는 의혹이 제기되고 따라서 국정조사 증인으로 채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與 '매수사건' 규정▼

국민회의측은 이날 ‘이총재가 직접 해명해야 할 의혹들’이란 논평을 통해 △이총재가 문건을 알게 된 시점과 경위 △정의원이 이기자에게 돈을 준 사실을 알게 된 시점 △이기자와의 관계 △이총재의 언론관 등을 밝히라고 촉구했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폭로과정’의 범주에 속하는 일이다. ‘작성과정’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다. 이 때문에 국민회의의 접근태도는 “이기자의 비리가 속속 드러나는 상황이 주는 ‘충격’으로 인해 정치적으로 유리한 고지에 섰으니 이제 사건의 중심을 ‘폭로과정’ 쪽으로 옮겨 한나라당을 몰아붙이자”는 식으로 보이는 것이다.

▼野 "야당매도" 주장▼

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즉각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한나라당은 이날 이총재 주재로 두 차례 긴급 의원총회를 열어 ‘언론대책문건’ 파문에 대한 여권의대응을‘야당흠집내기’ 공작이라고 규정하면서 장외집회 등 강경투쟁을 결의했다.

이같은 한나라당의 태도에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 건 사실이다. 경위야 어떻든 폭로당사자인 정의원이 이기자에게 거액의 금품을 제공한 사실이 드러난 이상 전적으로 ‘야당매도’로 몰아붙일 수만은 없는 일이다. 그 대목에 대해서는 그 대목대로 책임을 져야 할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작성과정’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져야 할 당위성이 저상(沮喪)될 수는 없다.

문제는 ‘폭로과정’은 그런 대로 밝혀지고 있는 반면, ‘작성과정’은 갈수록 미궁(迷宮)에 빠져드는 양상으로 사건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작성과정’과 관련해 현재 드러난 경위는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연수 중인 중앙일보 문일현(文日鉉)기자가 누구와의 상의나, 누구의 주문도 없이 이종찬부총재에게 보낸 ‘사견(私見)’이고 △이부총재는 보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도 못한 채 이기자에게 절취를 당했다는 것이 전부다.

물론 이 경위대로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문제는 사건 발생(정의원이 국회 대정부질문을 통해 문건을 폭로한 25일) 초기 ‘공신력(公信力)’을 지닌 여권 핵심인사들과, 문건을 전달받은 이부총재 자신의 입을 통해 다른 ‘작성과정’이 있음을 확신케 할 여러가지 다른 ‘정황증거’들이 쏟아져 나왔다는 사실이다.

▼실세 말뒤집기 의혹▼

그러나 이들 여권 핵심인사들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28일 오후부터 자신들의 말을 뒤집는, 그래서 ‘은폐의도’로 해석될 소지가 있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면서 ‘폭로과정’에서의 핵심사안인 이기자의 비리를 캐내고 공표하는 데만 몰두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제 사건과 관련해 가장 유리한 고지에 섰으니 더이상 사건이 확대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미다. 바로 이런 태도 때문에 이번 파문이 발생하게 된 진원(震源)인 ‘작성과정’을 흐지부지 넘겨버리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의혹이 증폭되는 것이다.

〈김차수기자〉kimc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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